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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문홍/장군 묘(墓)

입력 | 2004-02-27 19:05:00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으로 손꼽히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는 43만2500평의 너른 부지 위에 5만4455위의 애국선열이 잠들어 계신 국가의 성역(聖域)이다. 이곳의 장병 묘역은 장군 묘역(355위), 장교 묘역(4487위), 사병 묘역(4만6559위), 군무원 묘역(1952위) 등으로 구분돼 있다. 국립묘지에는 이 외에도 국가원수 묘소, 임정(臨政)요인 묘역, 애국지사 묘역, 국가유공자 묘역, 경찰 묘역 등이 조성돼 있다.

▷죽어서 국립묘지에 묻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은 유공 군인 및 순직 경찰관, 국장(國葬) 또는 국민장(國民葬)으로 장의된 인물 등 매우 제한적이다. 얼마 전 남극 세종기지에서 사망한 전재규 대원을 이곳에 안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나 중국의 바바오(八寶)산 혁명공묘에는 참전용사 외에 정치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에 공헌한 사람들이 묻혀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안장 기준은 너무 엄격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얼마 전 국방부가 입법 예고한 국립묘지령 개정안을 놓고 파문이 일었다. 그동안 편법으로 이뤄져 온 장군 묘역의 봉분을 합법화하겠다는 내용이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급기야 고건 총리는 어제 국립묘지령 개정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그렇지 않아도 대령급 이하 군인은 모두 화장돼 1평짜리 묘역에 묻히는 데 비해 장군은 8평 묘역에 매장되는 것이 시대역행적 차별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런 터에 국방부가 이번에 ‘꼼수’를 쓰려다 질타를 받았으니 국민의 마음을 너무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국립묘지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했지만 시신조차 찾지 못한 10만4000여 용사가 위패봉안관에 모셔져 있고, 지하 납골당에는 6200여위의 무명용사 유골이 안치돼 있다. 그 수많은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위패봉안관은 면적이 210평, 납골당은 고작 45평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립묘지를 찾는 참배객은 넓고 봉분까지 갖춰진 장군 묘역보다 이곳에서 더 짙은 애국선열의 체취를 느낄 것이다. 묘지 넓이나 봉분의 유무가 죽은 이의 위엄을 더 높여 주는 것은 아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