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정점을 향하고 있다. 정치인과 기업에 대한 수사가 아직 한창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끝내기 수순이다. 경선자금 문제도 시끄럽긴 하지만 수사 확대 여부는 불투명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조사를 받게 될지, 노 대통령의 이른바 ‘10분의 1’ 발언은 어떻게 정리될지 하는 것 정도가 남은 관심사다.
머잖아 수사 결과에 대한 안팎의 평가가 쏟아지겠지만, 검찰이 어떤 식으로든 ‘몰매’를 맞는 일은 불가피할 것 같다.
요동치는 최근의 정가 동향이 말해주듯 어차피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정치권 어느 편도 수사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검찰을 원망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아 검찰에 대해 이미 할 말을 다한 상태다. 검찰이 영락없이 ‘3각 파도’의 한복판에 들어선 형국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각은 다소 다른 것 같다. 수사가 완벽하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의 공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검찰은 지난해 초만 해도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경원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팬클럽이 생길 만큼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다.
‘편파수사’ ‘과잉수사’라는 목소리도 심경은 이해되고, 나름의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들의 ‘자가발전’식 주장이 대부분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한나라당이 ‘4대 기업 불법자금 502억 대 0’ 등의 주장을 펴지만 대기업 불법자금만 중요한 건 아니다. 노 대통령측의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훨씬 넘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지 오래다. 이제 노 대통령이 ‘10분의 1’ 발언에 책임을 질 차례가 됐다.
이는 검찰 수뇌부가 전례 없이 인사권자인 대통령까지 직접 겨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사사령탑인 안대희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독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지만 “나는 독한 사람이 아니고 ‘맑은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사심 없이 수사를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겠다는 ‘자기최면’이 아닐지….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줄 구속’ 국회의원들도 거의 예외 없이 혐의가 입증되고 있다.
기업인들도 ‘경제 회생’ 운운하지만 우리 경제가 이번 수사로 무너질 만큼 부실한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정치권에 ‘차떼기’로 뭉칫돈을 갖다 바치는 관행 등이 없어져야 재도약이 가능하다.
검찰 수사의 긍정적 효과도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당장 4월 총선에서 돈을 주고받겠다고 생각하는 후보나 유권자는 별로 없는 듯하다. 자연스러운 ‘물갈이’로 참신한 신인들의 여의도 진출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일단 사건 당사자들은 겸허하게, 국민들은 냉정하게 검찰 수사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바라볼 때다. 몰매는 사법부의 판단 등을 지켜본 뒤에도 늦지 않다.
분명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우선순위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척결에 있다. 이 시대적 당위가 또다시 권력과 정쟁, 대기업에 발목을 잡힌다면 후진정치 청산과 선진사회 진입은 영영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최영묵 사회1부 차장 y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