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산업거점도시 육성’ ‘세계 최고 항만물류도시’ ‘일자리 2만개 창출’….
광역자치단체들이 새해 시정·도정계획으로 앞 다퉈 내놓은 각종 ‘사업 이행계획(로드맵)’의 명칭이다.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까지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사업들. 그러나 대부분 예산확보 방안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실태와 문제점=부산시는 2010년까지 부산을 세계적인 항만물류도시로 만든다는 목표로 무려 55조원이 소요되는 ‘그레이트 4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지난해 말 4000억원을 투입해 대규모 한방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계획은 구체적인 예산확보 방안이 없어 벌써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전북도가 설 직전 발표한 ‘새만금 향후 개발 방안’은 예산협의는커녕 환경영향평가도 검토하지 않아 ‘새만금사태’가 재연될 소지마저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계획이 중앙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진행되거나, 중앙정부의 사업이 지자체 사업으로 둔갑한 것이다. ‘재탕’한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불필요한 비용의 낭비를 낳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 광역단체는 외부용역비를 100억원이나 들여 각종 사업 100여건을 발주했지만 제대로 추진되는 사업이 거의 없다.
▽원인과 대책=이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표’를 지나치게 의식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는 단체장들의 잘못된 의식 때문이라는 지적.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이 같은 계획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구의 한 시민은 “개발계획에 투입된다는 돈이 천문학적 액수라 피부에 전혀 와 닿지 않는다”며 “단체장이 바뀌거나 선거철만 되면 온갖 정책이 춤을 추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48개 자치단체 가운데 61%가 지방세로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월급조차 주기 어려운 형편이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수라는 얘기다.
하지만 류성걸(柳性杰) 예산처 예산관리국 관리총괄과장은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당연히 예산 배정에 대한 검토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영남대 우동기(禹東琪·지방행정) 교수는 “지자체의 발전계획은 정치인의 선거공약과는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며 “계획만 요란하고 예산은 불투명한 지역발전 계획은 결국 주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전주=김광오기자 ko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