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안풍 사건’과 관련해 16일 오후 서울고법에 출석한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이훈구기자
‘진실을 밝히느냐, 모든 책임을 떠안고 감옥에 가느냐.’
16일 열린 이른바 ‘안풍(安風)사건’ 항소심 공판은 재판 시작 전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이 강삼재(姜三載) 당시 신한국당 의원에게 국가안전기획부 자금을 직접 건넸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기 때문.
재판 20분 전 먼저 서울고법에 도착한 강 의원은 40여명의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법정에 들어섰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법정에서 밝히겠다”고만 말했다.
강 의원은 재판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당시 자금을 김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았다는 주장이 언론에 보도된 뒤 한숨도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심지어 삶을 포기하고 싶기까지 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강 의원은 “지난해 9월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고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모든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인간적 의리를 지키는 것이 국민과 역사에는 커다란 배신행위가 되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이어 강 의원은 “진실을 밝히느냐, 모든 책임을 떠안고 감옥에 가느냐에 대해 고민 중”이라며 재판부에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강 의원이 그동안 닫혀 있던 ‘입’을 열 가능성을 내비침에 따라 이 사건 재판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가 ‘인간적 의리’를 언급한 대목은 김 전 대통령에게서 자금을 직접 받았을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돼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강 의원이 입을 열 경우 검찰이 김 전 대통령을 조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강 의원은 1심에서 “정치도의상 자금의 출처를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징역 4년에 추징금 731억원이 선고됐으며 2심 재판 과정에서도 출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유죄가 예상됐었다.
한편 재판부는 문제가 된 자금의 출처가 김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이 최근 강 의원 변호인의 입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또 재판부는 강 의원에게 “인간적 의리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며 “항소이유서에서 재판의 부당성을 지적했는데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