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 스님은 “이번 탁발 순례에 종교적 색채를 완전히 배제했으며 ‘생명 평화’라는 보편적 원칙에 공감한다면 어떤 종교인과도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일기자
“3월 1일부터 지리산 일대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사람들에게 생명과 평화의 삶을 가꾸어 가자는 탁발(托鉢) 순례를 펼치려고 합니다.”
전북 남원시 실상사 전 주지 도법(道法·55) 스님이 앞으로 3년간 ‘생명과 평화의 탁발’을 하는 유랑승이 되어 전국을 순례한다. 그는 그동안 6·25전쟁 때 좌우이념 갈등으로 지리산 일대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1000일 기도를 위해 3년 가까이 실상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우선 지리산 인근의 전남 구례군, 경남 하동 산청 함양군, 남원 등을 돌고 4·3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제주도로 건너간다. 이후 북상해 전국을 돌 예정. 예상 기간은 3년이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순례의 목표는 생명과 평화가 일상적 문화가 되게 하는 것. 이 목표와 탁발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탁발은 출가 수행자가 밥을 빌려 육체를 지탱하고 진리를 빌려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는 “생명과 평화를 나눠주는 순례가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생명과 평화의 마음을 나에게, 이웃에, 사회에, 민족에 꺼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라고 탁발의 의미를 설명했다.
“삶의 여유와 평화는 이기적 욕구를 비워냄으로써 얻어집니다. 밥이나 돈, 잠자리같이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해와 화해의 마음을 누군가를 위해 내놓는 역량을 길러주고 싶어요. 나누고 베푸는 마음이 생길 때 평화가 있다는 점을 함께 깨닫고 싶습니다.”
그는 지난해 ‘새만금 살리기’ 3보1배(三步一拜)를 했던 수경 스님 등과 함께 순례할 계획이다. 제주로 가는 배편만 제외하고 나머지 여정은 모두 걸어 다니면서 1개면(面)에 하루씩 머물 예정. 지역마다 탁발의 행태는 다르다.
“제주처럼 4·3사건의 아픔이 있는 곳에선 그 아픔을 나누는 위령천도제를 지낼 겁니다. 절박하게 육체적 능력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몸 바쳐 일할 거고, 전북 부안군처럼 갈등이 극심한 곳에선 화해의 장을 만들어볼 수도 있겠지요.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선 문화행사를 할 수도 있고…. 딱 어떻게 한다는 기준은 없어요. 상황에 맞게 대응할 생각입니다.”
도법 스님은 부처님이 탁발에 빈부를 가리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충고했던 것처럼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순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계획 같지만 저는 ‘걷자, 만나자, 이야기하자’라는 간단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순례에서 갈등과 폭력의 매듭을 풀 수 있는 계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그는 순례가 일과성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 ‘10만인 평화결사 서약’도 받을 계획이다. “일상적 삶에서 생명 평화사상을 실천하겠다고 서약할 10만명을 모으려고 합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