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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나누고 베풀고 '아름다운 기부' 물결

입력 | 2004-01-08 16:23:00

'사랑의 도시락 릴레이’서울 강남의 한 생활용품업체 홍보부 직원들이 5일 추억의 양은 도시락에 성금을 모으는 ‘사랑의 도시락 릴레이’ 행사를 벌이고 있다(위). 같은 날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굿네이버스 주최로 열린 ‘겨울방학교실’ 행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점심을 챙겨주고 있다. 이종승기자


《주는 사람이 행복하다. 기부가 공동체 구성원의 엄숙한 책무만은 아니다. 즐거운 참여, 소소하되 오래가는 일상으로서의 기부가 ‘나눔’의 참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연례적 성금 모금대신 크고 작은 이벤트를 통해 적극적인 참여의 장을 만드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또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결제시스템이 정착되면서 개인의 소액 기부도 증가하고 있다. 동아일보 위크엔드는 신년기획 ‘스타 애장품 Give & 기부’를 시작하면서 어린이 돕기 사업을 펼치는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를 통해 기부문화의 한 자락을 들여다봤다. 》

○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생활용품 업체 홍보부 사무실. 197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양은도시락 10여개가 사무실 곳곳에서 칸막이를 넘나든다. 도시락 안에 들어있던 것은 수북한 지폐. 아니, 이젠 ‘차떼기’에 이어 ‘도시락떼기’까지?

도시락 뚜껑 위에는 ‘사랑의 도시락 릴레이’란 문구가 쓰여 있다. 추억어린 양은도시락에 ‘성금’을 모아 아이들에게 ‘밥’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모금행사다. 11년째 연말연시 이웃돕기 성금을 거둬온 이들은 ‘뭔가 더 적극적인 동기부여가 될 방식’을 찾다가 굿네이버스가 개발한 ‘사랑의 도시락 릴레이’행사를 올해 접하게 됐다. 이 행사는 굿네이버스가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개발한 이벤트식 모금행사.

“보통 내가 낸 성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잖아요. 도시락 성금은 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쉽게 알 수 있어서 마음이 더 뿌듯해요. 내가 뭔가를 한 것 같고….”(천태영 대리)

“도시락을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이 도시락에 밥을 먹을 아이들 생각을 하니 흐뭇해요.”(이용일 차장)

도시락 딸그락거리는 소리에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 와서 기웃거린다. 한 남자 직원도 “아이들한테 김밥을 싸 주냐”고 묻더니 “단무지라도 사라”며 지폐 몇 장을 넣어주고 갔다.

이날 양은도시락에 모인 돈은 121만원. 결식아동 484명에게 점심을 제공할 수 있는 액수다. 여러 직장이나 단체에서 이렇게 모아 보낸 성금으로, 굿네이버스는 방학인 요즘 서울시내 43개 초등학교에서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겨울방학교실(5∼21일)을 열고 참가 어린이 1100명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전해주고 있다.

○소액기부 개미 군단의 확산

이강령씨(25·중앙대 광고홍보학과 3)는 지난해 말 인터넷에서 사회복지 단체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마우스를 한번 클릭하면 2500원을 후원하는 온라인 기부행사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씨는 “후원을 하면 그래도 1만원 이상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렇게 거창하고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설지인씨(22·서울대 외교학과 4학년)는 고3때인 2000년 코소보 난민의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지금까지 매달 1만원씩 기부금을 낸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설씨가 지정한 케냐 고로고초의 빈민가에선 엄청난 금액이다.

요즘은 이 같은 온라인 기부자, 소액 기부자들이 꾸준히 느는 추세. 굿네이버스가 인터넷을 통해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등을 진행한 결과 온라인 기부회원이 1년 만에 4만여명에서 40여만명으로 늘어났다. 온라인 회원 증가는 개인 기부자 증가와도 맞물린다. 지난해 기업 기부금은 7% 줄었으나 개인 회원의 기부금은 그 전해와 비교해 4억여원이 늘어난 11%의 증가세를 보였다.

김인희 복지사업본부장은 “소액으로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방식이 회원들에게 부담도 덜 주고,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소액이지만 꾸준히 참여하는 기부자들은 기회가 되면 형편껏 액수를 늘리는 경향도 더 강하다고 한다.

○ 결국 나를 돕는 일

부산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전모씨(42·여)는 10년째 국내 거의 모든 복지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열혈 기부자’다. 본인뿐 아니라 남편을 포함한 5명의 가족 명의로 내는 기부금은 한달에 30만∼40만원. 경기가 안 좋아 약국 임대료를 못내는 달에도 후원금은 거르지 않는다.

그는 “우리도 부자였으면 좋겠다던 아이들도 어느덧 남을 생각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봉사정신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기부를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이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회사원 홍모씨 (40·서울 마포구 망원동)도 매달 30만원씩 후원금을 내는 ‘고액 기부자’다. 지난해 결혼한 그는 아내 조모씨(38·회사원)와 함께 “아이 교육비를 적립한다고 생각하자. 만약 우리 아이가 없더라도 이웃의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임신을 했다. 결혼이 늦어 아기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기쁨이었다. “이웃돕기 후원금을 이제는 원래 목적인 아이 교육비로 쓸 계획이냐”고 묻자 그는 “당연히 그럴 수 없죠.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야 내 아이도 행복한 것 아니겠어요”하며 빙그레 웃었다. “생활이 조금 어렵기는 하겠죠. 하지만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들도 소중하잖아요.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져야 내 아이도 행복할 수 있고요.”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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