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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수학거미' 시리즈 일부 펴낸 안재찬씨

입력 | 2003-12-28 18:14:00

수학은 왜 배울까, 복잡한 공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때 잘나가던 학원강사를 그만두고 동화를 통한 수학교육을 시도하는 안재찬씨는기계적으로 문제풀이만 반복하는 수학교육은 학생들의 창의력을 기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성남=권주훈 기자


“도대체 이 많은 수식과 미적분 따위가 살아가는 데 무슨 쓸모가 있다는 거야?”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이 같은 의문을 안은 채 머리를 싸매고 수학 공부에 매달린다. ‘수학교육 전도사’ 안재찬(安宰燦·41)씨의 수학인생도 학창시절의 이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수학보다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안씨가 대학에서 전공한 것은 영문학과 경제학. 막상 인생항로를 바꾸게 된 계기는 대학원의 ‘거시경제학’ 강의였다. 수학으로 논리정연하게 경제를 설명하는 한 교수에게 감명 받아 전공을 바꾼 것. 늦깎이 공부였지만 프랑스 파리 제7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수학에 몰두하면서 어릴 적 고민이 하나씩 해결됐습니다. 집합과 함수를 왜 배우고 학자들은 왜 이런 이론을 만들어냈는지 등을 차근차근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재밌더군요.”

94년 귀국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밥벌이를 위해 들어간 곳이 서울 강남의 입시학원. 단순한 문제풀이가 아니라 ‘왜’ 그 문제들이 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될 수밖에 없는지를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가르친 그의 강의는 그해 수능시험 문제 대부분을 족집게처럼 맞히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96년에는 강남구 대치동에 ‘안재찬 수학클리닉’을 열었다. 수강생이 1200여명에 이르렀고 전국에서 몰려든 학생들이 대기표를 받아들고 몇 달씩 기다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훗날 사교육의 메카로 부상한 ‘대치동 붐’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안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매달 억대 수입을 올리며 ‘잘 나가던’ 강사 안씨는 97년 11월 수능시험 직후 학원 문을 닫아 버렸다. “수능이 이렇게 쉽다면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하다. 학원은 공교육의 보조에 불과하니 역할이 없다면 물러나야 한다”는 이유를 걸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다시 학원을 열라’며 시위를 벌였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 뒤 ‘수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책을 쓰겠다’고 다짐한 안씨는 초중고교 수학 전 과정을 동화로 구현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수학은 철학과 같습니다. 논리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선 읽는 훈련이 우선돼야 합니다.”

전 재산을 쏟아 부어 세계 각국의 수학교육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수년간 이 작업에 매달린 결과 지난해 말 디스켓 1만2400장, 120쪽짜리 책 1080권 분량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정리됐고, 초중고교 교육과정 전편을 아우르는 424편의 동화가 탄생했다.

‘수학거미’시리즈(화인미디어)로 국내에서도 일부 출간된 이 수학동화 콘텐츠는 이미 중국의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마쳤고 미국 프랑스 등의 출판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의대 법대로만 몰리면 나라의 장래는 없습니다. 이공계 전공자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요. 그러려면 교육정책입안자들이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새해에는 유럽의 저명 수학자들 생가에 머물면서 그들의 인생과 사상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계획이다. 대학 시절 문학잡지의 소설 공모에 당선된 경력이 있는 안씨는 이제 수학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손때 묻은 수학책과 디스켓들로 가득 찬 그의 연구실을 나서며 대학입시용 공식 암기가 우선인 우리의 척박한 현실에서 이야기로 읽고 논리로 생각하는, 그런 방식의 수학 공부가 어떤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해졌다.

성남=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