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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김윤환 前민국당대표 타계

입력 | 2003-12-15 19:11:00


김윤환(金潤煥) 전 민국당 대표가 15일 그의 아호처럼 ‘빈 배(허주·虛舟)’로 떠났다.

1979년 유정회 의원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딘 뒤 5선(選)을 거치는 동안 그는 대세의 흐름을 읽어내는 탁월한 판단력과 긴장과 갈등을 조정하는 남다른 정치력으로 항상 한국 정치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노태우(盧泰愚) 정부와 김영삼(金泳三) 정권을 연이어 출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킹메이커’였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당시의 일.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내가 직접 호남에 내려가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지원유세를 하겠다”고 나서자 노 후보측은 “전 대통령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고 초조해했다.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양 진영의 미묘한 갈등기류를 감지한 허주는 전 대통령을 설득해 결국 호남 유세계획을 철회토록 했다.

그는 노태우 정권 말기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YS 대세론’에 앞장섰다. 당시 영남권 결속의 명분으로 그가 내건 캐치프레이즈 ‘우리가 남이가’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허주의 정치력은 정국이 난마처럼 꼬일수록 더 빛을 발했다.

182cm의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88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야당과의 물밑 채널을 가동해 정국 돌파구를 마련했다. 3당 합당의 물꼬를 튼 장본인도 그였다.

그러나 “항상 양지(陽地)만 쫓아다녔다”는 비판이 따라다닐 만큼 화려했던 그에게도 시련은 닥쳤다.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회창(李會昌) 카드’를 통해 세 번째 킹메이커를 자임하고 나섰지만 결과는 이 후보의 패배였다. 곧이어 그는 2000년 2월 16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 전 총재로부터 ‘공천 탈락’이란 불의의 역습을 당했다. 그는 탈당해 민국당을 창당해 맞섰지만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 전 총재를 향한 구원(舊怨)은 오래갔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2년 전 허주와 만나 점심을 같이할 때 내가 주문한 스테이크를 다 먹을 동안 허주는 음식에 눈길 한 번 주지도 않았다. 나를 상대로 1시간 내내 이 전 총재에게 쌓인 감정을 털어놓더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대선 직전 김영일(金榮馹)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통해 ‘이회창 지지’를 전격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선택도 빗나갔다.

지난해 12월 신장암 판정을 받은 그는 올 1월 암 치료차 미국으로 떠났지만 회복불능 판정을 받고 10월 2일 국내로 돌아와 투병생활을 계속했다.

이 전 총재는 10월 28일 직접 허주의 서울 방배동 자택을 방문해 화해를 청했다. 거의 혼수상태였던 그는 이 전 총재의 “미안하게 됐다”는 말에 잠깐 정신이 든 듯, 미소로 답했다는 후문이다. 15일 이 전 총재가 대선자금 문제로 사과기자회견을 가진 뒤 검찰로 향하는 시간에 허주는 세상을 떴다.


15일 작고한 '킹 메이커' 김윤환 전 민주국민당 대표는 탁월한 정치감각과 조정 능력으로 늘 한국 정치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김 전 대표가 민주당 대표위원 때인 1995년 8월 30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당무보고를 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같은 해 8월 28일 정국 설명차 노태우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아산병원 빈소 표정▼

김윤환 전 민국당 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는 분향소가 설치된 오후 3시부터 생전에 고인과 정치적, 인간적 교분을 쌓았던 조문객들의 발길과 조화가 줄을 이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조화와 함께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을 빈소에 보내 유족들을 위로했다.

김영삼(金泳三) 노태우(盧泰愚) 전두환(全斗煥)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 그리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도 조화를 보냈다.

또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 민주당 박상천(朴相千) 전 대표,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 등 3당 지도부와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김진재(金鎭載) 신경식(辛卿植) 하순봉(河舜鳳) 김기배(金杞培) 이재오(李在五) 신영국(申榮國) 김용갑(金容甲) 이상배(李相培) 김무성(金武星) 주진우(朱鎭旴) 박승국(朴承國) 임태희(任太熙), 열린우리당 김명섭(金明燮),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의원과 신상우(辛相佑) 전 국회부의장, 이자헌(李慈憲) 함종한(咸鍾漢) 정호용(鄭鎬溶) 봉두완(奉斗玩) 전 의원, 이승윤(李承潤) 전 부총리 등이 조문했다.

또 민국당 김동주(金東周) 대표와 사회민주당 장기표(張琪杓) 대표도 빈소를 찾았다.

한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는 이날 검찰 출두로 인해 16일 오전 11시 빈소를 방문키로 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