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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펀드귀재 3인의 새도전

입력 | 2003-11-20 17:55:00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미래에셋증권 7층 회장 집무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근황을 묻자 짤막히 “틀어박혀 ‘상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가 즐기는 상상은 다름 아닌 ‘한국형 프라이빗에퀴티펀드(PEF)’. 사모(私募) 펀드의 하나인 PEF는 미국계 론스타, 칼라일, 뉴브리지캐피털 등이 1998년 이후 잇따라 국내 주요 금융기관 및 기업을 인수하면서 국내 시장에 알려졌다. 국내에서 ‘펀드의 귀재’로 불리는 인사들이 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제는 때가 됐다=시장 관계자들이 꼽는 선두주자는 박 회장과 KTB네트워크 권성문 사장, KDB론스타 우병익 사장 등이다.

올 2월 미국에서 귀국한 권 사장은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기업 인수 등을 독식하게 된 데는 국내 투자 전문가그룹이 제 역할을 못한 책임도 크다”며 “이제는 국내 투자자들이 제 역할을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최근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부처에서까지 심도 깊게 논의되고 있는 ‘토종(土種) 펀드’의 필요성과 ‘내국인 역(逆)차별론’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 회장은 “한국도 펀드 운용 및 기업구조조정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고 시중의 부동자금이 400조원이나 돼 자금을 모으는 데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화되는 ‘한국형 PEF’의 꿈=권 사장은 최근 KTB네트워크를 ‘벤처투자회사’에서 ‘투자전문회사’로 바꿔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부실기업 등을 인수해 상장 및 등록을 시킨 뒤 빠져나오는 지금까지의 투자방식에서 벗어나 정상 기업이라도 기업 가치를 높여 되팔 수 있다면 과감하게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1조원인 투자자산 규모를 3조원까지 늘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시장에서는 당장 외국계 기업 및 펀드와 맞서야 하는 대우종합기계의 인수전이 KTB가 투자전문그룹으로 나서는 첫 실험무대가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박 회장의 구상은 좀 더 구체적이다. 현재 인수를 위해 실사 중인 SK투신운용을 ‘PEF’ 전문회사로 내년 1, 2월경 공식 출범시킬 계획이다.

그는 “금융업종 투자에 주력하겠다”며 “1000억원 규모는 줄여서 얘기한 것이고 최소한 3000억∼4000억원대의 펀드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기업구조조정회사(CRC) 업계에서는 우 사장이 현재 여러 CRC와 연합해 기업 인수를 목적으로 한 대형 펀드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론스타의 노하우와 자금동원력을 익힌 그가 어떤 ‘활약’을 할 것인지에 대해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현실은 장밋빛만은 아니다=하지만 이들이 넘어야 할 벽도 많다.

우선 ‘펀드’라는 이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다.

우 사장은 “돈을 많이 벌면 ‘뒤에 뭐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의 시선부터 던지는 것이 펀드시장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권 사장과 박 회장도 이 때문에 2, 3년 전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외국계 PEF는 전주(錢主) 등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감독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자산운용을 한다. 하지만 모든 전주가 드러나고 각종 규제가 적지 않은 한국에서 과연 거액의 자금을 모으고 다양한 분야에 투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정부도 PEF 활성화를 위해 많이 고민하고 있지만 제도를 바꾸는 것이 워낙 복잡한 작업이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사모 펀드. 운용사가 100인 이하로 각종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와 부호(富豪), 때로는 오일머니까지 끌어들여 만든다. 주로 기업을 사서 3∼5년 동안 구조조정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차익을 챙긴다. 미국에서는 규제가 거의 없어 자금 모집과 운용에서 자유로운 게 특징.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