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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증가 앞지른 稅收증가 재정은 6년째 적자

입력 | 2003-11-12 18:50:00


《최근 정부가 부동산 관련 세금을 대폭 올리기로 함에 따라 당초 전망과는 달리 내년도 조세부담률이 올해보다 떨어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 또 법인세율 인하 논의도 지지부진해 전반적으로 경쟁국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되는 국내 기업들의 세금부담은 당분간 줄어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금 부담은 늘어나는데도 잇단 적자국채 발행으로 나라 빚은 점점 늘어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때문에 조세나 재정정책이 국가경쟁력에 역행(逆行)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전문가들은 투기를 잡기 위한 부동산 관련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대신 법인세 등 다른 분야 세금을 낮추거나 세제(稅制)와 세정(稅政)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정부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전반적인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높아지는 세금 부담=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1990∼2000년 세수(稅收)는 연평균 11.9%씩 늘어난 반면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0% 증가에 그쳤다.

여기에다 세금으로 잡히지는 않지만 대표적인 준조세(準租稅)인 부담금 명목으로 지난해 정부가 거둔 돈이 7조4482억원(국민 1인당 평균 15만6000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넓은 의미의 세금부담은 더 크다.

정부는 세금 문제가 나올 때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통계의 함정’이 있다.

물론 OECD 회원국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2002년 현재 36.2%로 한국의 22.8%(2003년 기준)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이는 북유럽과 영국 등의 조세부담률이 크게 높은 데 따른 것이다. 선진국 가운데도 일본은 한국보다 상당히 낮으며 미국과 독일은 우리보다 비슷하거나 다소 낮다.

▽구호에 그친 ‘넓은 세원(稅源), 낮은 세율(稅率)’=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을 대폭 올리기로 했다.

아파트 공시지가를 올려 양도세를 낼 사람을 늘린 데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인 과세표준(과표)과 세율도 인상해 세금만 더 거두게 된 것.

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집을 살 때 내는 취득세와 등록세 세율은 낮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시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데다 이들 세금을 매기는 기준을 실거래가로 바꾸겠다는 방침이어서 세율이 낮아지더라도 세금은 오를 가능성이 크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경쟁국들은 자영업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소득을 파악해 세금을 물리는 대신 법인세율은 낮추고 있다”며 세율 인하를 촉구하지만 정부는 세수 확보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를 대며 미온적인 태도다.

인천대 전영준(全瑛俊·경제학) 교수는 “기업 관련 세율이 높아지면 국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물론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데도 방해가 된다”며 “세계 각국이 법인세율을 낮추는 추세에 맞춰 우리도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정도 갈 길 멀다=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전 세계 100여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별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을 세계에서 18번째로 경쟁력이 있는 나라로 선정했다. 그러나 세부 평가 항목인 세정 분야에서는 47위로 한참 낮은 수준이었다.

한국조세연구원 현진권(玄鎭權)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현실적으로 국세청과 수평적 관계를 이룰 수 없는 만큼 세제보다는 세정에 더 민감하다”며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세청부터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빠지는 국가 재정=정부는 태풍 ‘매미’의 복구피해를 위한 추경으로 올해 안에 3조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당초 목표한 균형재정이 무너지고 98년 이후 6년째 적자재정 편성이 불가피해졌다. 해외에서는 “오랫동안 한국 경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재정건전성이 점점 훼손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부채를 합한 국가채무는 정부 공식통계에 따르더라도 2002년 말 현재 133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외환위기가 닥친 97년의 60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2.2배로 급증한 규모다. 연금적자 등을 포함해 정부가 갚아야 하는 실제적인 나라 빚은 이보다 훨씬 많다.

더욱이 내년에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 등 부실 전환증권사의 정상화를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 추가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재정상태는 더욱 취약해질 전망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편성안도 국가 경쟁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짜여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반 회계 기준으로 내년 예산규모는 117조5400억원 가운데 그나마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올해 18조2830억원에서 6.1%(1조1151억원) 감소했고, 산업·중소기업 지원 예산도 올해 3조8635억원에서 11.2%(4346억원)나 줄었다.

반면 사회복지 예산은 분야별로 볼 때 가장 큰 폭인 9.2%(1조285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편성됐고 국방 예산도 8.1%(1조4264억원) 늘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