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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홍순영/이라크 派兵은 미래투자

입력 | 2003-11-06 18:19:00


한 나라 군대의 해외 파견 결정은 그 나라의 비전, 가치관, 국가이익 등 한마디로 총체적인 정책 판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동서 냉전시대에는 베트남에, 냉전 이후에는 동티모르에 파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번의 파병은 모두 그 시기의 우리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며 시대적 요청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라크에 파병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는 이미 원칙적으로 전투병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 결정에 반대가 있다. 이 반대는 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파병 기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평화유지 임무이긴 하지만 부족과 종파의 이익을 달리하는 반대 세력의 도발이 있을 것이고, 우리에게 생소한 현지 문화와 자연조건 하에서 어느 정도 인명피해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병 문제는 그 이익과 손실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에도 국제지원 필요 ▼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냉전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두 개의 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한다는 큰 흐름 속에 있다. 안보와 평화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과 테러리즘 방지는 그 흐름 속에서 세계 규범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이라크의 후세인이 몰락하고 이라크 민주화와 재건의 새로운 과제가 국제사회에 주어진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라크 재건에 대해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의 인접국인 일본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보면서 미국과의 맹방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다짐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포위되고 있다. 중국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미국에 이라크 파병을 약속한 것이다. 이라크 재건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우리가 민주주의 확산의 흐름에 동참한다는 것도 큰 명분이 될 수 있다.

이라크와 주변 지역의 안정과 평화는 지역의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다. 우리도 이라크 재건사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라크 관계는 강화되고 동반자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유지에 기여한 민주국가로서 높은 평가와 존경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선례는 우리가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함으로써 이미 세운 바 있다. 그 선례를 잘 따라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국가이익이 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이다.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평화공존의 패러다임을 확고히 하고 평화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국제사회로부터 확실한 이해와 지지를 받아야 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지지와 지원이 없는 평화통일은 생각하기 힘들다. 독일통일은 미국과 소련의 지지와 지원으로 가능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간국가(middle power)인 한국의 경우에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장래를 생각한다면 이라크 파병은 국제사회의 신뢰와 존경을 받기 위한 선(先)투자인 셈이다.

▼위험요소 최소화 지혜 모아야 ▼

우리가 사는 이 글로벌시대에는 어느 나라도 고립되어 살 수가 없다. 경제와 안보, 교육과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가 국제사회의 활기찬 일부가 되지 않고는 국가의 성장과 번영을 기약할 수 없다. 감상적 민족주의, 배타적 국가주의로는 성장 번영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의 많은 신생 국가들이 실패했던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의 경험을 알고 있다. 오늘의 시대에는 더 그러하다. 국가경쟁력의 종점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얻은 신뢰와 존경이 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안으로는 정직한 사회, 자유와 질서가 있는 사회를, 밖으로는 규범을 지키는 나라,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의 손익계산을 하면서 우리는 오늘의 이익보다는 장래의 이익을, 미시적 이익보다는 거시적 이익을 더 생각해야 할 것이다. 파병의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고 이익, 즉 평화와 건설에의 기여를 극대화하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장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홍순영 객원논설위원 전 외교통상부·통일부 장관 yshongsenio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