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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명품]아파트, 품위의 옷을 입다

입력 | 2003-11-03 16:27:00


《대형건설회사 D사와 I사. 한때 서울 강남지역에서도 노른자위로 꼽히는 주택가에서 아파트 공동분양을 계획할 정도였지만 요즘은 관계가 소원하다. 원인은 올 9월로 예정됐던 재건축아파트 추진 방식과 수익 배분을 둘러싼 의견차에서 비롯됐다. 특히 공동사업하기로 한 아파트에 사용할 브랜드를 놓고 서로 자사 브랜드를 고집하면서 시작됐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주택시장에서 브랜드 중요도가 갈수록 커지면서 최근 건설업계에 이 같은 업체간 분쟁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법정 분쟁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고 인기 연예인을 모델로 모시려는 경쟁까지 붙어 몸값을 수억 원대까지 올려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브랜드를 제작, 홍보하는 데만 한 해에 100억원 가까이 써야 한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그렇다면 이런 희생을 치르면서 만든 아파트 브랜드가 정말 제몫은 하는 걸까?》

▽브랜드 도입과 효과=90년대 중반까지 아파트브랜드는 ‘건설회사 이름+아파트’라는 단순한 형태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분양가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면서 아파트가 없는 아파트 브랜드가 등장했다. 기존 아파트보다 고급 아파트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목적이었다.

주택사업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업체들이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선발업체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려는 의도도 반영됐다. 해외여행이나 TV 등을 통해 외국의 고급 주택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소비자들이 보다 세련된 이미지를 선호하는 현상도 브랜드 도입 붐의 원인이 됐다.

여기에 개성을 강조하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들이 아파트를 더 이상 잠자고 밥 먹는 주거공간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를 표현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그렇다면 브랜드 도입 효과는 있는가? 주택업계는 이에 대해 효과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코오롱건설과 공동으로 최근 2년 이내 신규아파트를 구입한 가구주 및 주부 250명을 대상으로 ‘향후 입주 희망아파트’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3.4%가 ‘브랜드아파트’를 선호했다. 반면 ‘일반아파트’는 16.6%에 그쳤다.

특히 이 같은 브랜드 선호도는 30, 40대와 서울 강남 거주자 및 관리·전문직 등의 종사자 등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이에 대해 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보편화되고 있는 아파트브랜드가 소비자들의 선호도뿐 아니라 아파트의 품질과 가치에 대한 대리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브랜드 제작의 애환=이처럼 브랜드의 중요도가 커지면서 브랜드를 정해야 하는 건설회사 담당자들의 어려움도 커졌다. 우선 발음하기 좋고 외우기 쉬우면서도 뜻이 좋은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 좋은 이름을 찾았더라고 등록을 위한 절차를 밟다보면 이미 등록된 이름이거나 몰랐던 뜻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신규 브랜드 선정작업을 진행 중인 K사의 경우 최종 후보를 몇 가지 선정했지만 낙점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대부분의 이름이 이미 브랜드개발 업체들이 등록해놓은 상태이거나 타 업체들이 사용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든 브랜드를 가급적 많이 활용하고 싶은 욕심은 당연한 것. 이 과정에서 업체간 경쟁이 심해져 신경전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올 상반기 동시 분양된 서울 강남구 도곡 주공 1차 재건축아파트는 여전히 ‘도곡동 제1차 아파트’로 불린다. 재건축 시공사인 현대건설 쌍용건설 LG건설 등이 서로 양보하지 않은 결과다.

반면 시공사 브랜드를 모두 사용한 브랜드도 나온다. 최근 대구에서 공급된 ‘황금주공재건축아파트’는 시공사인 롯데건설(캐슬)과 화성산업(파크)의 브랜드를 섞어 ‘황금동 롯데·화성 캐슬골드파크’라는 긴 이름이 붙여졌다.

아예 새로운 이름이 붙는 경우도 있다. 조만간 경기 수원역 인근에서 분양할 금강종합건설과 중앙건설의 아파트는 두 회사의 브랜드와 상관없는 ‘센트라우스’로 이름이 정해졌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경희궁의 아침… 용비어千家…이런 이름 어때요?▼

대형 건설업체에서 중소건설업체에 이르기까지 ‘내 이름’이 없는 아파트는 생존 자체가 어려운 게 요즘 건설업계의 현실이다. 1990년대 초반 만해도 아파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청약자들을 줄 세워가며 호령을 해도 분양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건설사 우위, 소비자 열위’의 시대가 뒤바뀌었다. 주택공급량이 늘고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건설사가 소비자에게 먼저 다가서 상품을 홍보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가장 손쉬운 제품 홍보는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브랜드의 도입이었다.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을 시작으로 삼성 ‘래미안’,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쌍용건설 ‘스윗닷홈’ 등 각종 브랜드가 선보인 것도 이 무렵이다. 이들 초기 브랜드의 특징은 편안함, 안락함 등 주거의 기능성에 초점을 뒀다. 특히 e-편한세상, 아이파크, 스윗닷홈 등은 당시 불어 닥친 인터넷 열풍을 주거환경에 접목시켜 아파트의 첨단 기능을 상징했다.

건설업체마다 브랜드 도입이 보편화되면서 브랜드 네이밍도 차별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브랜드의 파격을 가져온 것은 쌍용건설의 ‘경희궁의 아침’. 옛 경희궁터라는 지역적 특성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도심에도 쾌적한 주거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마케팅하기 위한 작명이다.

뒤이어 나온 금호건설의 ‘용비어천가(龍飛御千家)’도 비슷한 맥락. 조선 세종 때 선대의 왕업을 기려 지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 일천천(千)과 집가(家)로 글자를 바꿨다.

고급이미지를 내세운 브랜드도 있다. 롯데건설의 ‘캐슬’, 이수건설 ‘브라운스톤’, 금호건설 ‘리첸시아’ 등이 대표적. 캐슬은 누구나 한번쯤 살고 싶어 하는 최고급 주거공간인 성(城)을, 브라운스톤은 19세기 미국 뉴욕과 보스톤의 최고급 저택을, 리첸시아는 부(富)를 뜻하는 영어의 ‘rich’와 지식인을 뜻하는 러시아어 ‘intelligentsia’의 조합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대우 ‘푸르지오’, 금호 ‘어울림’처럼 발음하기 쉬운 우리말을 살려 친숙함을 높인 브랜드도 선보였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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