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선거’ 청산 방안의 하나로 중대선거구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 여야 중진들 사이에서 동시에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2일 입을 맞춘 듯 중대선거구제 논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내 이해관계와 민주당과의 조율=홍 총무는 2일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구당과 중앙당을 ‘돈먹는 하마’로 만들 수밖에 없다”며 지구당 폐지와 함께 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선거구제가 당론인 한나라당의 흐름과는 배치되는 발언이다.
물론 홍 총무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책임총리제가 시행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들었고, 최병렬(崔秉烈) 대표도 “총무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국회 다수당의 원내총무가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일고 있다.
당내에서는 대체로 현 선거구도의 변경을 원치 않는 영남권 중진들이 소선거구제 고수를 주장하는 반면, 강인섭(姜仁燮) 의원 등 지명도를 갖춘 수도권 중진들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대선 때부터 중대선거구제를 당론으로 주장해 왔다. 여기에 정 총무가 이날 분권형 개헌과 함께 중대선거구제를 적극 주장하는 보도자료를 돌려 양당 총무가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았느냐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여야 협의 전망=열린우리당은 특히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경우 영남권의 비중 있는 인물들의 원내진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노 대통령도 지난달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선거구제 개편의 핵심으로 ‘지역구도 철폐’를 내세우며 지론인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채택을 거듭 호소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 중대선거구제가 비중 있게 거론될 경우 정치개혁을 위한 포괄적 논의에서 핵심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민련은 당론으로 대선거구제를 주장해온 터여서 중대선거구제 논의가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진석(鄭鎭碩) 의원은 “고비용 정치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대선거구제를 하자는 입장”이라며 중대선거구제 논의 확산을 반겼다.
물론 한나라당 내부에서 나오는 중대선거구제 논의는 SK비자금 100억원 수수 파문에서 벗어나 제도개혁 전반을 논의해 보자는 ‘국면전환용’ 카드의 성격도 없지 않다. 또 민주당 내 호남 지역구 의원과 자민련 내 충청권 의원들도 내심 현행 소선거구제를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정치자금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여야에서 ‘고비용 정치구조’ 타파를 위해서는 ‘돈 드는’ 지구당제를 폐지하고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지역구도 타파라는 명분과 ‘전국적 지명도로’ 승부하려는 여야 중진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질 경우 중대선거구제 논의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중대선거구제'란▼
한 지역구에서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중대선거구제는 1선거구에서 2∼5명을 뽑는 선거 방식이다. 일본이 소선거구제로 환원(94년)하기 이전까지 채택했던 선거구제도이며 한국도 85년 12대 총선까지는 2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중대선거구제는 중선거구로 부르는 게 정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 선거구에서 6인 이상을 뽑는 대선거구제와 구별하기 위해서다. 대선거구제는 특히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연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