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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국민의 정부]4부⑧軍인사의 난맥

입력 | 2003-10-29 17:56:00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 대대적인 군 인사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과거 정권과 마찬가지로 특정지역에 편중되는 인사를 되풀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DJ가 2002년 10월 1일 국군의 날 54주년 행사장에서 군 관계자들을 격려하며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윗물을 맑게 하는 것은 내가 책임질 테니 아랫물은 여러분이 책임지세요.”

1999년 말 일선 군부대를 순시하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수행하던 군 고위관계자에게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군내에서는 DJ의 이 말이 김영삼(金泳三) 정부까지 역대 영남 정권에서 ‘왜곡돼 온’ 군 인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군 통수권자로서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과연 DJ의 이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DJ 정부 출범 초기 안보자문을 맡았던 한 관계자의 증언.

“출범 초기 DJ 정부의 지상 과제는 오랜 세월 고착화된 지역 편중 인사를 바로잡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인사개혁이 추진됐습니다. 그중에서도 군은 ‘0순위’였죠. 그러나 결과는 또 다른 특정지역의 독식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장성 가운데 호남 출신이 20%도 안됐습니다만 DJ 정부에서는 완전히 거꾸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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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편중’의 징조는 DJ 정부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 6월 육군본부 고등검찰부는 육군 인사참모부 소속인 호남 출신 A중령 등 2명을 500만∼1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돈을 받은 명목은 진급청탁이었다. 이 사건은 DJ 정부 시절 겉으로 드러난 유일한 군 진급 관련 비리사건이었다. 두 명이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전역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지만, 당시 군 내부에선 두 사람의 여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장성들의 대규모 진급 비리가 포착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군 수사기관은 A중령에 대한 조사를 통해 DJ 정부의 군 특혜인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진급청탁 리스트를 극비리에 입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리스트에는 군 인사의 핵심인 중령→대령, 대령→준장 진급자 수십명에 대한 진급청탁 과정과 그 결과가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한 군 관계자의 증언.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군 인사비리의 실체가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리스트에는 인사청탁을 시도한 진급후보자와 청탁자, 청탁의 성공 가능성 및 결과가 빼곡히 정리돼 있었죠. 특히 청탁자 중에는 호남 군맥의 실세로 불리는 C씨와 K씨를 비롯해 현직 장성들의 이름도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리스트가 공개됐다면 ‘핵폭탄급’ 파문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했죠.”

그러나 이 리스트는 이후 존재 여부조차 불문에 부쳐졌다. 한 군 관계자는 “군 수사기관은 리스트를 상부에 보고했고 이를 본 군 수뇌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윗선’에서 리스트를 파기토록 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DJ 정부의 군 인사 난맥상을 표출한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99년 11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허대범(許大梵)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한 통의 진정서를 읽어 내려갔다.

“금년도 진급심사는 한마디로 호남 출신과 그들에게 빌붙어 진급한 장교, 일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는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폭거이며….”

이 진정서는 육사 35기 출신의 한 영관급 장교가 진급인사에 불만을 품고 작성한 것으로 특정지역과 특정고 출신을 조목조목 거명하며 편중 인사 사례를 빼곡히 나열한 것이었다.

여당인 국민회의 의원들이 “괴문서로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며 허 의원의 발언을 저지하며 속기록 삭제를 요청하는 바람에 회의는 파행됐다. 당시 이 진정서는 국방부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도 게재됐지만 곧 자취를 감췄다.

DJ 정부의 군 인사 편중 실태에 대해 상당수의 군 관계자들은 “역대 정권에선 지역편중보다 몇몇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인맥 중심의 인사가 문제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선 지역이 인맥을 덮어버렸다. 그 작업도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한 육군 관계자의 증언.

“DJ 정부 출범 이후 구성된 국방개혁위와 각 군 개혁위를 통해 호남 군맥의 구축을 위한 정지작업이 본격 추진됐습니다. 비호남 출신 군맥을 숙정하기 위한 ‘살생부’가 작성되기도 했는데 대상은 대부분 영남 출신 영관급 장교와 장성들이었습니다.”

이런 기초 작업을 토대로 대대적인 호남 편중 인사가 추진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남 출신 육사 36기 80여명 중 3차례의 진급 기회를 통해 DJ 정부 마지막해인 지난해까지 대령으로 진급한 사람은 19명에 불과했지만 호남 출신은 전체 대상자 59명 중 51명이 대령으로 진급했다. 또 지난해 육사 특정기수의 경우 1차 진급자 전원이 호남 출신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특히 장성급 인사는 더욱 심했다.

대부분 DJ 정부 시절 이뤄진 육사 30기의 대령→준장 진급률을 보면 호남 출신은 28명 중 17명이 별을 달았지만 영남 출신은 50명 중 11명에 불과했다. 또 8명의 중장이 배출된 육사 27기의 경우 호남 출신은 진급 대상자 6명 중 5명이 진급한 반면 영남 출신은 8명 중 3명, 기타 지역은 6명 중 1명밖에 진급하지 못했다. 육사 26기의 경우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중장 진급자 10명 중 호남 출신이 5명(대상자 7명), 영남 2명(대상자 7명), 기타 지역 3명(대상자 6명)이었다.

호남 특정고 출신의 약진도 눈에 띈다. 지난해 9월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DJ 정부 출범 이후 준장 진급자의 출신고교는 광주고(15명), 광주일고(10명), 전주고(9명) 순으로 많았다. 또 같은 기간 출신고교별 전체 장성 수를 보면 광주고와 광주일고가 각각 23명과 13명이었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편중인사의 여파로 일선의 특정 부대는 최고지휘관부터 주요 참모들까지 모두 호남 출신으로 채워져 ‘호남군단’, ‘호남사단’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특정지역 출신들끼리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다 보니, 내부 견제가 느슨해져 인사비리를 조장하는 결과가 빚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능력이나 평판으로는 진급이 불가능한 사람이 특정 인맥과 ‘검은 거래’를 통해 승승장구했다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다른 육군 관계자는 “수년 전 호남 출신인 K대령의 경우 비육사 출신이어서 장성 진급이 힘들어지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윗선’에 수억원을 상납했다는 얘기가 군내에서 공공연하게 나돈 적이 있다. 전직 군 수뇌부 A씨의 직계인 K장군도 상당한 돈을 제공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진급 대상자의 부인이 남편 몰래 인사권을 쥔 상급자의 부인을 상대로 청탁을 하거나 상급자 부인이 하급자 부인에게 거액의 ‘진급 알선료’를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었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DJ 정부 기간에 호남 군맥의 구축작업이 ‘신속하고 원활히’ 이뤄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진급 관련 핵심 인사요직을 호남 출신들이 장악한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다수 군 관계자들은 호남 출신인 육군 K장군을 호남 군맥의 ‘일등공신’으로 꼽는다. 한 전직 육군 관계자는 “K장군은 육군의 인사요직을 맡아 사실상 전권을 행사했다. 그는 군 핵심 실무진에 호남 출신 영관급 장교들을 앉혀 ‘인맥’을 구축한 뒤 ‘윗선’의 묵인 하에 파행 인사를 거듭했다”고 주장했다.

K장군과 함께 호남 군맥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전북 출신의 또 다른 K장군. 그는 인사 관련 부서에 근무할 때 수뢰사건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장군으로 진급됐다.

진급심사위원회에 제출되는 인사자료를 작성하는 진급 관련 부서에 특히 호남 출신이 많았는데, 여기서 특정인의 인사자료를 의도에 따라 ‘조정’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고 다수 군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한 군 고위관계자는 DJ 정부 군 인사를 다음과 같이 총평했다.

“한마디로 ‘한풀이 인사’였습니다. 특히 5년간 호남 출신에 대한 철저한 보직관리를 시켰으니 정권이 바뀌어 공정경쟁을 한다고 하지만, 군의 허리인 영관급에서 이미 호남 독점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에 상당기간 이 상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軍인사좌우 기무사 호남출신이 싹쓸이▼

지난해 말 K준장 등 국군기무사령부의 장성급 관계자 2명이 국방부 기자실을 찾았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 내부인사에 불만을 제기한 당사자로 보도됐던 이들은 “더 이상 파장이 확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뒤 자리를 떴다.

며칠 뒤 두 사람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이와 관련해 기무사의 A씨는 “당시 두 사람은 특정지역 편중 인사로 피해를 보게 되자 그 부당성을 국방부 고위층에 강력하게 항의했었다”며 “이런 사실이 알져지면서 내부적으로 파장이 상당했다”고 밝혔다.

김대중 정부의 군 편중 인사의 사례로 기무사령부를 빼놓을 수 없다.

DJ 정부에서 기무사령관을 지낸 사람은 3명으로 모두 호남 출신이다. 이남신(李南信·육사 23기·전북 익산) 김필수(金필洙·육사 26기·전북 고창) 문두식(文斗植·육사 27기·전남 화순) 전 사령관이 그렇다.

군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DJ 정부 5년 동안 사령관뿐 아니라 참모장과 처장 등 주요 보직을 호남 출신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해 내부 불만이 팽배했다”고 말했다.

기무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고위 장교들의 존안자료를 작성하는 것. 이 자료는 장성인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DJ 정부의 기무사는 이 존안자료를 특정인에게 유불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인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다수 군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다른 관계자는 “K씨가 참모총장일 때 기무사 고위관계자가 각 군 인사참모부장 을 기무사로 불러들여 진급 인사를 조정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또 기무사 고위관계자와 육본 인사참모부 고위 관계자가 호텔에서 진급 인사안을 짜 참모총장에게 보고했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돼 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DJ 정부 기무사는 편중인사의 본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기무사 관계자는 “DJ 정부는 전체 ?인사를 장악하기 위한 전 단계로 기무사부터 확실하게 ‘내 사람’으로 채웠다. 그러다보니 기무사 내부가 군내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지역차별 편중인사가 심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 장=이동관 정치부장

▽정치부=반병희 차장

박성원 최영해 김영식 부형권

윤상호 이명건 이승헌 기자

▽경제부=홍찬선 박중현 김두영 기자

▽기획특집부=윤승모 차장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