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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이인호/'메이저리거 이승엽'의 홈런수는?

입력 | 2003-09-26 18:06:00


한국 프로야구의 젊은 강타자 이승엽 선수가 각종 신기록을 양산하고 있다. 그가 최근 작성하고 있는 기록은 다양하다. 26세10개월4일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300홈런 달성(6월 22일), 최소경기 40홈런 세계신기록(7월 26일), 최소경기 50홈런 동급 세계기록(9월 5일), 시즌 최다 홈런 동급 아시아기록(9월 25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에서 나온 이들 기록을 우리보다 한 단계 이상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는 미국에서 과연 얼마나 인정해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시뮬레이션 이용 측정가능 ▼

보다 구체적 형태로 누군가가 “이승엽 선수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첫 시즌에 50홈런을 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객관적인 답이 될까. 비대칭으로 생긴 구장들, 타석에서 펜스까지의 평균거리 증가, 시속 5∼10km 정도 빠른 상대 투수들의 평균 구속 등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항목들이다. 반면 팀당 경기 수는 133경기에서 162경기로 늘어난다. 실제로 한 선수가 메이저리그 특정 팀으로 이적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에서 상대한 투수들의 구질, 홈런 타구의 비거리, 낙하점 분포 등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기록할 수 있는 홈런 수를 대략 추정할 수는 없을까.

자연과학과 공학에서는 이같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는 ‘전산 시늉(Computer Simulation)’이라는 연구 방법을 애용한다. 이것은 컴퓨터를 이용한 수치 계산을 바탕으로 특정 현상을 수치들로 기술하고, 가정과 조건에 따라 처리하고 평가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전산 시늉은 전통적으로 수행돼 온 이론적 접근 방법과 실험적 접근 방법의 특성들을 동시에 가진 ‘제3의 연구방법’으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위험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실제 실험을 대신할 수 있고 실험 조건들을 비교적 쉽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상들을 잘 기술하도록 기본 가정이 설계되고 검정을 거쳤으며 또한 그 한계들이 잘 밝혀진 전산모형은 신뢰도 높은 예측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전산 시늉은 마치 숫자를 이용한 ‘실험’처럼 유용할 수 있다.

전산 시늉의 첫 사례로는 1943년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물리학자들이 기계식 계산기를 이용해 중성자 퍼짐 문제를 풀어 원자탄 제조를 도운 것이 꼽힌다. 중성자 퍼짐은 플루토늄의 핵분열을 시작하게 하는 중성자들과 분열된 플루토늄으로부터 재차 생성된 중성자들의 전체적인 흐름을 말한다. 당시 중성자에 의해 핵분열이 어떠한 속도로 진행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중성자의 퍼짐을 실험했다면 아마도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실험으로 기록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전산 시늉이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일기예보, 원자로 설계, 핵폐기물 처리기술, 오염원 확산예측, 신약 설계, 신물질 물성예측과 특성조사, 화학-반도체 공정 설계, 별 생성 연구, 풍동실험 등이 그것들이다.

▼ 새로운 가정-변수 도입이 숙제 ▼

최근 컴퓨터의 성능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다. 전산모형이 잘 정립된 경우 사용하는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앞서 말한 ‘수치실험’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그렇지만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이 전산 시늉으로 언제나 예측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사용하는 가정들이 현실적으로 정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컴퓨터로 취급 가능한 변수들의 수도 턱없이 제한돼 있다.

결국 전산 시늉은 새로운 문제 풀이 방식을 찾는 과정과 연계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제반 문제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 고갈되지 않는 한 전산 시늉에 따른 제약은 새로운 타당성 있는 가정의 도입, 기본원리의 색다른 원용, 그리고 효율적 계산 수행절차 개발 등에 의해 극복될 것이다.

이인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ihlee@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