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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만나는 시]권대웅, '내 몸에 짐승들이'

입력 | 2003-09-21 17:42:00


늑골에 숨어살던 승냥이

목젖에 붙어 있던 뻐꾸기

뼛속에 구멍을 파던 딱따구리

꾸불꾸불한 내장에 웅크리고 있던 하이에나

어느 날 온몸 구석구석에 살고 있던 짐승들이

일제히 나와서 울부짖을 때가 있다

우우 깊은 산

우우우 울고 있는 저 깊은 산

그 마음산에 누가 절 한 채 지어주었으면.

- 시집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문학동네) 중에서

제 갈빗대 뽑아 만든 암승냥이를 만나면 벼락처럼 달려가고, 보릿고개 마른 목젖들에게 젖은 뻐꾹 소리라도 흘려 넣어주고, 앉아서 간 스님 목탁 놓치면 딱따그르- 저녁 예불 대신 올리고, 죽어서 추깃물 흘릴 것들 추스를 염쟁이 하이에나 있으니 그 산 참 깊다.

숨은 그림 찾듯 시인은 자기 몸에 깃든 짐승들을 용케도 찾아냈다. 혹여라도 누가 승냥이 하이에나 때려 쫓고, 뻐꾸기 후여- 딱따구리 날려보내면 적막강산에 들꽃은 뭐 하러 혼자 피나?

절 한 채 따로 지을 것 없다. 들짐승 우짖는 마음산이 통째로 사원이니 누가 절 속에 절을 짓느냐. 잠시 승냥이 쉬고, 하이에나 졸 때 바삭거리는 갈잎 풍경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귀 기울이는 자는 이미 법당에 든 자이다.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