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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홍찬식칼럼]꽃동네에서 생긴 일

입력 | 2003-08-08 18:28:00


한국인은 8월과 12월에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다는 통계가 있다. 8월은 태풍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12월은 연말이라서 기부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 같지만 우리 기부문화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드러내는 생생한 예가 아닌가 싶다. 장점은 우리가 워낙 정이 많은 민족이어서 슬픈 사연을 알고는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태풍 피해자들의 딱한 처지가 언론에 보도되면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각계의 온정이 쏟아진다.

▼‘횡령 스캔들’ 기부문화에 찬물 ▼

반면에 단점을 꼽자면 기부문화가 일상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정 시기에 기부금이 몰린다는 것은 다른 시기에는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도 된다. 기부를 순간적인 동정심과 눈물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구나 도움을 받는 당사자의 슬픈 사연이 과장된 것이거나 기부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동정심은 한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릴 수도 있다.

국내 최대 복지시설인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가 횡령 혐의로 스캔들에 오르고 얼마 전 기소까지 된 것이 우리 기부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다. 우리 기부문화는 이제 막 확산되기 시작한 단계여서 더욱 안타깝다. 꽃동네측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국내 기부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낸 돈이 투명하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과거 꽃동네의 좋은 이미지 때문에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당장 꽃동네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줄줄이 떠나고 후원금도 격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보호받고 있는 2000여명의 식구들도 벌써 그 여파를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연간 수십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올 정도로 각계각층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곳이 바로 꽃동네였다. 월급에서 얼마씩 떼어내 다달이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그들의 작은 정성은 삭막한 세태에 한줄기 희망이었다. 꽃동네를 후원해 온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어찌됐든 사법처리까지 초래한 꽃동네에 일차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복지시설 운영의 투명성은 기부선진국에서도 골치 아픈 과제다. 연간 2000억달러에 육박하는 기부금이 걷히는 미국에서는 비영리단체의 신용등급을 매겨 기부자들에게 알려주는 자선 감시기구까지 활동 중이다. 우리도 복지단체의 윤리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 그나마 이번 파문에서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럼에도 꽃동네의 ‘추락’은 못내 아쉽다. 꽃동네 같은 대규모 복지시설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 그것만으로 큰 손실이다. 이번 파문으로 기부자들이 다른 복지시설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되면 후원금이 줄고 경영이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 공백을 누가 메워줄 것인가. 건강한 부모를 부양하는 일도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린 마당에 보호를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누구는 정부가 나서야 된다고 하지만 정부에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부자 나라들도 이 문제로 고민하는 상황에서 재정위기를 갓 벗어난 정부에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빈곤 문제라는 거대한 늪에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빈부격차의 확대에다 청년 실업의 장기화, 경쟁대열에서 조기 탈락한 사회적 열패자의 증가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곳곳에서 비극과 불행이 양산되고 있다. 이에 대한 각종 대책과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으나 정작 뾰족한 수가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 ‘한번의 시행착오’로 끝나야 ▼

이들에게 삶의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본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게 훨씬 현실적인 방법이다. 정부도 빈곤대책을 서둘러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부문화를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확실한 대안이다. 이 점에서 ‘꽃동네에서 생긴 일’은 한 번의 시행착오로 생각하고 넘어가야지 이 때문에 기부문화의 뿌리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웃에 대한 따듯한 배려가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고 암울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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