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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정부 100일]이념과 감성의 리더십…'法治'설땅 잃어

입력 | 2003-06-02 18:52:00


《출발선을 겨우 100일 지난 노무현(盧武鉉) 정권의 리더십과 위기관리능력을 둘러싸고 의사결정 방식의 불안정으로 국정혼란이 심해지고 있다는 비판과 참여민주정치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과도기의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표방한 국정목표와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인사, 여론수렴방식 등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제왕적 코드와 人治▼

국정이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경직된 ‘코드’ 때문에 장관들이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시스템 무력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화여대 김석준(金錫俊) 교수는 “대미정책이나 전교조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노 대통령은 코드에 안 맞는 정부조직보다는 감성의 표출을 통해 지도력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결국 제도보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 특정라인에 의존하는 인치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작은 집단에서 통용되는 코드에 집착할 경우 이 집단에 가서 이 말 하고 저 집단에 가서 저 말을 하는 역할 혼선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지지층과 반대층 모두의 이반현상을 초래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박진(朴進) KDI 교수는 “새 정부 들어 부처담당 수석비서관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의 국정보고를 받지 않는 것도 국정 조정능력의 공백을 초래하는 요인”이라며 “국무총리와 국무조정실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주류 의식과 戰線의 형성▼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재야·운동권과 야당 시절의 ‘비주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국정책임자로서의 책임감보다 소수파의 피해의식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은 나라종금 로비의혹에 연루된 측근 안희정(安熙正)씨, 재산관련 의혹을 사고 있는 친형 건평(健平)씨, 후원회장 출신 이기명(李基明)씨에 대해 ‘감싸기’로 일관하는 자세나 대통령 방미시 비상전화를 받지 않은 대통령 비서진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

김정남(金正男) 전 대통령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은 “뜻 맞는 사람들에 대한 편식 편애에서 벗어나 공동선(共同善)을 찾아나서는 대통령, 국민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 과거의 타성이나 자기를 밀어준 사람들의 특수선(特殊善)에서 대통령이 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비판세력에 밀리면 죽는다’는 식의 전투적 리더십이 아니라 정책 효율성과 업무를 위주로 하는 합리적 리더십, 통합형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마추어적 의사결정▼

권위 탈피라는 이름 아래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격식 파괴를 선도하는 것도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완충지대가 사라지고 갈등이 극단화할 경우 최종조정자로서의 권위가 실종되기 때문이다.

또 권력의 위임과 분권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음에 따라 모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대통령에게 미뤄지는 것도 아마추어적 의사 결정행태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대 김홍우(金弘宇) 교수는 “청와대는 광범위한 의견을 받아들이기 위해 늘 비어 있어야 하는데도 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경험과 의식을 절대시하다 보니 나라의 인재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국정원장 인사 문제를 꼬집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광주 5·18묘지 시위’와 화물연대의 파업 사태에 대해 집단주의에 굴복하는 자세를 보인 데 대해서도 아마추어리즘의 결과란 지적이 나온다.

▼포퓰리즘적 동원정치▼

토론과 인터넷을 중시하는 직접민주주의 정치방식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국회와 언론을 통한 여론수렴을 외면한 채 사회적 갈등과 세몰이식 대결정치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하대 김용호(金容浩) 교수는 “검사들과의 토론을 통해 검찰 인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까 문제 있는 곳에서는 모두 ‘대통령 나오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토론보다 법 집행을 중시할 때 대통령 없이도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통령의 도덕적 우월주의는 비판여론 수렴을 통한 ‘자기 교정’ 기회를 스스로 차단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 안청시(安淸市) 교수는 “코드 맞는 사람들로 방어벽을 쳐서 청와대와 내각 사이에조차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인 것 같다”며 “각계각층의 여론청취 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특히 여당이 여론수렴 채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國政 꿰뚫는 철학이 안보인다▼

김영명교수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당시 많은 국민이 기대를 걸었지만, 100일을 맞은 지금은 걱정이 깊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필자는 가장 큰 원인을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철학 부재라고 본다. 사람들이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아니라 노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안정보다는 개혁과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 대통령을 찍은 사람이나 반대한 사람이나 모두 혼란스럽다. 그의 정책이 실용적인 이유로 방향을 틀었다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후보자 시절과 당선 이후에 바뀌어야 할 것은 정책의 기조가 아니라 언행의 모습인데도 거꾸로 언행은 바뀌지 않고 정책 방향만 바뀌니, 갈등이 증폭될 뿐이다.

새 정부는 12개의 국정과제를 내놓았지만, 산적한 현안을 정리해 놓았을 뿐, 이들을 관통하는 근본 철학을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 개혁과 안정은 양자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둘 다 좇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한 쪽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교육정보화 파동에서 보듯이 정부는 이 둘 중 어느 것에도 확신을 못 가지고 헤매고 있다. 반대가 거세더라도 신념을 가진 정책은 추진해야 하고, 신념이 있더라도 잘못된 정책은 포기해야 한다. 말의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이 둘의 차이점과 경계선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 지혜이고 지도력이다.

대통령의 혼란은 노선상의 중심을 잡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다. 현재 노 대통령 정부는 여러 현안에 대증(對症)요법으로 매달릴 뿐, 뚜렷한 국정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쯤은 노 대통령이 말한 ‘개혁’이 과연 어떤 내용과 방향인지는 적어도 지지자들에게 알려주어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민 통합은 필요해도 유권자 통합은 필요 없다. 되지도 않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개혁파, 안정파를 모두 잃지 말고 확실한 한쪽의 방향을 분명하고 알기 쉽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김영명 한림대 사회과학대학장

▼한나라 盧정부100일 평가▼

한나라당은 2일 노무현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한미공조 복원엔 후한 점수를 줬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 이하’라고 평가했다. 현 정부 출범 100일 동안 국정혼란이 계속되고 대통령 주변의 각종 의혹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순봉(河舜鳳)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공조를 재확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축하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는 것 같다”며 “편을 가르는 ‘코드정치’와 아마추어의 미숙함으로 반복되는 국정 대혼란, 대통령 주변의 온갖 의혹은 아직도 무성하다”고 비판했다.

하 최고위원은 이어 “노 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도 분열통치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언론 탓을 늘어놓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미숙한 정치행태”라고 덧붙였다.

김진재(金鎭載) 최고위원도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된 언론사들의 부정적 여론조사 결과를 거론한 뒤 “노 대통령은 자숙하고 경제와 민생 챙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굳건한 한미관계를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 △법과 원칙에 의한 국정운영 △‘아마추어 내각’의 교체 △대통령 주변 각종 의혹의 엄정 조사 등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 안에 100개 입법을 성공한 것은 야당의 협조 때문이었고, 우리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 이상의 성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양현덕(梁賢德)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적어도 노 대통령처럼 취임 후 100일 동안 언론과 싸움을 하거나 신당 타령으로 사회의 불안을 조장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자민련도 한나라당의 평가 기조와 비슷했다.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이날 확대당직자회의에서 “국정 경험과 경륜 부족으로 인한 일부 인사들의 정책적 시행착오가 국정혼란과 경제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국민의 지적”이라고 언급했다고 유운영(柳云永) 대변인이 전했다. 정우택(鄭宇澤) 정책위의장도 “정책혼선과 사회갈등 조정능력의 미흡으로 국민들이 아직 참여정부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