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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프리즘]최재천/인간은 정말 '문화적 동물'인가

입력 | 2003-04-29 18:31:00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걸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문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동물사회를 관찰하는 내 눈에는 다른 많은 동물에게도 그들 나름의 문화가 있음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인다.

▼다른 동물들도 ‘학습과 전수’ 활동 ▼

문화란 정의하기가 그리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50여년 전인 1952년에 이미 미국의 인류학자 크로버와 클럭혼은 그때까지 제시된 문화의 정의를 무려 175개나 찾아냈다. ‘한 인간 집단의 생활양식의 총체’, 또는 ‘지식 신앙 예술 법률 도덕 관습,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에 의해 얻어진 다른 모든 능력이나 관습들을 포함하는 복합총체’라고 규정한 타일러의 정의(1871), 그리고 이에 ‘상징화’를 추가한 화이트의 사뭇 구체적이고 엄격한 정의(1977) 등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인간만이 유일한 문화적 동물이라는 관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일본의 원숭이들은 모래가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원래부터 그런 행동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공원관리인이 실수로 고구마를 모래사장에 엎질렀을 때 다른 원숭이들은 모두 그걸 그냥 먹느라 입 안 가득 모래를 씹어야 했지만 이모(Imo)라는 이름의 당시 두 살배기 암컷 원숭이는 고구마를 들고 바다로 내려가 물에 씻어먹었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원숭이들도 이내 이모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이 같은 행동은 곧 다른 이웃 집단들로 전파되고 다음 세대로 전수되면서 일본원숭이 사회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었다.

문화는 공유되고 학습되고 축적되며 늘 변화하는 속성을 지닌다. 문화의 풍요로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다른 동물들도 그들 나름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대대로 물려주기까지 한다. 다만 그들은 말과 행동으로 문화를 전달할 수 있을 뿐 우리처럼 문자와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만큼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우지는 못한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다른 어떤 동물들의 사회에서도 도서관과 박물관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바그다드 국립박물관과 도서관이 약탈당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너희도 별 수 없구나”하는 다른 동물들의 비아냥거림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함무라비 법전의 점토 설형문자판마저 사라졌다. 인류 역사를 통해 침략자들이 상대국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호해 주었는가는 그들 자신의 문화가 얼마나 풍요로운가와 무관하지 않았다. 미국이 바그다드의 문화가 유린되는 걸 방관했거나 심지어 조장했을지도 모른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미국 문화의 일천함 때문이다.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다.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나며 우리에게 남겨준 일종의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책들도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아 보여 안타깝게 부르짖는 구호이기도 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아이들 우유부터 끊었듯이 요사이 경제가 좀 어렵다 하니 모두 책부터 끊는다. 그래도 철학자 김용석은 책이 아직 살아있다고 외친다. “한 팔을 곱게 펴고 비스듬히 누운 나신(裸身), 애무를 기다리는 열정으로” 말이다.

▼도서관-박물관 약탈 인류의 수치 ▼

반만년 문화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 반듯한 도서관과 박물관이 몇 안 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수치이자 죄악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시작되었지만 김대중 정부 내내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노무현 정부가 하루빨리 실현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같은 맥락에서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과 MBC의 ‘느낌표!’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도서관 짓기 운동에 거는 기대 역시 각별하다.

우리는 지금 잠시 무력이 천하를 평정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지만, 결국에는 문화의 힘이 세상을 지배한다. 도서관과 박물관이 바로 문화 권력가들을 길러내는 곳이다. 삶의 전쟁터에서 자꾸만 문화가 죽어나가는 이 봄날, 나는 그래도 또 한번 르네상스를 꿈꾼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