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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수씨의 바그다드 리포트]'총알 비오듯'이란 말 실감

입력 | 2003-04-07 18:53:00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바그다드에 남아있는 프리랜서 사진기자 조성수씨가 급박하게 움직이는 현지 표정을 담은 제4신을 보내왔다.》

바그다드는 마침내 최악의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다. 공격자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승부를 가늠할 본격 작전 개시이고 수비자의 입장에서는 최후의 배수진을 친 항전의 시작인 셈이다.

한때 인류문명의 광휘로 빛났던 이 고도(古都)의 하늘은 7일 완전히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다. 그 사이로 섬광과 귀를 찢는 폭발음이 밤낮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익숙하게 들어온 폭격의 둔중한 원격음이 아닌, 귀를 찢는 듯한 기관총과 소총의 요란한 연속음이 탱크의 단거리 포격과 함께 가까이에서 작렬하고 있다.

그나마 안전지대로 여겨 외신기자들이 집단 근거지로 삼아온 팔레스타인 호텔 부근에도 하루 종일 폭격과 사격이 이어졌다. 총알이 비오듯한다는 표현. 나는 오늘에야 그 말을 실감한다.

어젯밤 뉴욕 타임스 기자인 테일러와 감마프레스의 사진기자인 프레드릭이 화들짝 놀라 내 방으로 달려왔을 때부터 모든 것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방탄조끼를 입은 채 12층 호텔방에서 강 건너 시가지 쪽을 바라보며 우박처럼 쏟아지는 총소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운전기사 라히드는 미군이 바그다드 공항에 이어 시가지로 들어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이라크군 중 일부는 자살폭탄으로 미군에 대항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미군이 사담국제공항을 점거했다는 소문을 부인하면서 여전히 이라크군의 통제 하에 있는 공항을 보여주겠다던 이라크 정부는 오늘 공항 대신 부서진 미군탱크 한대만 보여줬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도중 우리가 본 것은 무참히 부서진 바그다드 시가지의 모습이었다.

갈수록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 병원을 가득 채운 지 이미 오래지만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라크 정부의 언론통제가 철저해 외신기자들이 취재원에 맘대로 접근할 수가 없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으로 위성전화를 통해 외부소식을 접하곤 하지만 그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바그다드의 모습과는 또 다르다.

폭격으로 바그다드의 전화는 불통된 지 오래다. 전기도 끊어졌다. 3일 저녁 바그다드의 전 지역이 정전된 후 아직 복구되지 않고 있다. 호텔은 자체 발전기로 비상등만 겨우 켜진 상태다. 우리는 비상등 전구를 깨뜨린 뒤 그 안의 코일에 전선을 연결해 방안의 작은 스탠드를 켜고 컴퓨터, 위성전화, 카메라의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몇몇 상점은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북적대던 시장통은 이제 텅텅 비었다. 비로소 두려움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숨어 있거나 바그다드를 떠날 준비를 한다고 운전기사 라히드가 귀띔한다. 나는 가이드인 아부 무스타파와 운전기사 라히드 가족을 위해 지난주부터 호텔에 방을 두개 더 마련해 놓았다. 라히드는 그 방을 자신의 동생과 함께 사용하겠다고 한다. 아부 무스타파의 다섯 가족은 오늘 아침 호텔에 도착했다.

폭격이 이뤄질 때마다 사원(모스크)에서는 기도가 방송된다.

“신은 위대하다.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기도하러 사원에 몰려든 사람들 표정은 한결같이 무거웠다. 그곳에서 2년 전 내 운전기사로 일했던 사딕을 만났다. 그는 예비군으로 소집됐다.

“마지막 기도가 될지 몰라 사원에 들렀어.”

낡은 AK-47, 헝겊으로 동여맨 철모…. 기도하는 사딕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하다.

“죽고 사는 일은 모두 알라의 뜻이다. 당신에게도 신의 가호가 있길 빈다.”

기도를 마친 사딕은 나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사원을 빠져나갔다.

조성수 프리랜서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