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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민칼럼]생선과 권력, 그리고 언론

입력 | 2003-03-31 19:25:00


생선과 권력은 머리부터 썩는다는 말이 있다. 생선을 살 때 머리 상태부터 보는 것은 그런 이유이며 정권의 정수리에 가까워 권세가 큰 사람에게일수록 국민이 더욱 엄격한 도덕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부패의 가능성 때문이다.

최근 차를 바꾸고 집을 옮겼다가 구설수에 올랐던 한 측근의 사례를 보자.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까지 불리는 그는 “선배(처음에는 은행이라고 했다)한테 돈을 빌려 집을 옮겼을 뿐”이고 “승용차는 학생운동을 함께 하던 친구들에게서 선물로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겉으로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부패 쉬운 곳 백신 놓는 언론 ▼

그러나 정황을 뒤집어 놓고 보면 고약한 결과가 나온다. 우선 차를 친구회사 명의로 등록했다는 것이 그렇다. 이 차가 사고를 내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법적 처벌을 받는 쪽은 서류상 소유자인 친구 회사가 된다. 따라서 이 측근은 그냥 차 한 대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혜택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차를 본인 명의로 등록해 타고 다니는 보통 국민들과는 분명히 차별적인 일이다.

또 보험료와 세금 등 차량 유지비를 친구 회사가 부담했다면 그 회사는 업무상 배임을 한 셈이다. 지난 정권은 언론사 세무사찰 때 한 신문사의 오너가 운전자 딸린 회사차를 집에서 사용했다고 해서 파렴치범이나 잡은 것처럼 발표하고 회사를 처벌한 적이 있다. 당시 세무조사를 주도했던 바로 그 집권당의 간부가, 그것도 정권의 실세라는 사람이 비슷한 행동을 했는데도 이번 일은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사건은 본격적인 권력형 비리라기보다 부패의 예고편 정도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를 처벌하자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더구나 이 사건이 언론보도를 통해 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당사자가 신속하게 자기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았던가. 언론에 회자되는 괴로운 과정을 겪었지만 “막상 주목받고 보니 국민이 매우 엄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나 정부나 모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오보와의 전쟁’이라는 정부의 비우호적 정책에 언론이 주눅들어 이 사건에 침묵했더라면, 그래서 박테리아들이 달려들어 오랜 시간 집권자 주변을 부패하게 만들도록 언론이 방치했다면, 이 정권은 과거 정권처럼 명예롭지 못한 말로를 향해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권 초반에 백신을 맞음으로써 대통령 측근들은 하마터면 평생 질병의 흔적을 안고 살아야 하는 길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늘 그렇듯이 이번 일에서도 역시 언론의 비판은 집권자측에 약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사건을 보는 측근들의 시각이다. “개혁세력에 악의를 갖고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라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조사하느라) 시간을 써야하니 아까워 죽겠다”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부패의 박테리아가 측근과 실세 주변을 노리며 득실거리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권력형 비리는 미리 막아질 수 없다. 그런 걸 일깨워 주기 위해 언론은 오늘도 비판의 눈을 감지 않는다.

명함 속 이름 석자에 권세가 얹혀있는 사람은 사소한 언행에도 상대방이 무겁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늘 부패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여기서 언론은 권력의 오염과 정책의 왜곡 가능성을 알려주는 조기경보시스템이다. 그런 상대를 ‘전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정권 스스로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직 독자만 두려워할 뿐 ▼

오늘은 동아일보가 창간 83주년을 맞는 날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본보 역사에서 어느 한 때도 순탄했던 시절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는 폐간과 정간의 아픔을 겪었고 군사독재시절에는 광고탄압과 기자 강제해직으로 고통받았으며 김대중 정권 아래서는 공권력의 집중포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난에 익숙해진 동아일보에 요즘의 상황은 그렇게 새삼스럽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나 동아일보는 그저 권력이 각종 ‘박테리아’에 감염되지 않고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도록 ‘눈치 없이’ 바른 말이나 하는 ‘구박덩어리’ 역할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독자뿐이다.

이규민 논설위원실장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