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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변 빼면 살 빠져요" 믿어도 될까?

입력 | 2003-03-30 18:07:00


《腸세척? YES! 주부 양모씨(34·서울 강남구 역삼동)는 주변에서 장세척을 하면 살을 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최근 비만클리닉을 찾았다. 의사는 “매주 한번씩 3,4주 동안 장세척을 하면 몇 ㎏은 거뜬히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는 또 양씨의 얼굴에 낀 기미를 가리키며 “이것도 사라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양씨는 의사의 거듭된 독촉에 이 날 장세척을 받았다.

腸세척? NO! 직장인 이모씨(27·서울 마포구 도화동)도 다이어트를 계획하던 중 친구로부터 장세척이 좋다는 추천을 받아 전문클리닉을 찾았다. 그러나 이씨는 의사와 상담 도중 “나도 해볼까”했던 호기심마저 잃어버렸다. 이씨는 “변비 다이어트에 효과 있는 것은 물론 머리도 맑아지고 만성피로도 사라진다는 설명을 들으니 오히려 신뢰감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

비만클리닉과 변비클리닉을 운영하는 개인 병·의원, 한의원 등을 중심으로 장세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이어트를 위한 단식원에서도 장세척을 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장세척 기기들까지 시중에 나와 있다.

장세척 비용은 병원따라 다르지만 보통 1회에 10만원 안팎. 어떤 병·의원에서는 ‘10회에 얼마’하는 식으로 아예 장세척 패키지 상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한 개인의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사이트 오픈 이벤트로 ‘장세척 1회 무료 쿠폰’까지 나눠주고 있었다.

‘장세척을 통해 변비치료는 물론 머리가 맑아져 학습능력 좋고 여드름이나 아토피 등 피부질환과 비만까지 단시일 내에 코칠 수 있다’는 광고문구는 사실일까.

▽장세척이란=장세척과 관장을 혼동하기 쉽지만 이는 다르다. 관장이 변비환자의 항문에 관장액을 주입해 변을 배출하는 독립적인 ‘치료행위’인 반면 장세척은 그렇지 않다. 원래 장세척은 대장 내시경 검사를 위해 장을 비우기 위한 목적으로 세척하는 ‘치료의 한 과정’으로 세척액을 먹고 설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 개인병·의원, 한의원 등에서 확산되고 있는 장세척은 이와 다르다. 먼저 세척기계에 있는 세척관을 항문에 5∼7㎝ 정도 삽입한다. 그러면 기계가 자동적으로 압력을 조절하면서 관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세척액을 항문 안으로 흘려 넣는다. 약 1분 후 유입된 세척액과 함께 대장 내벽에 붙어 있는 노폐물이 관을 통해 배출된다. 보통 1회에 20∼30분이 소요되지만 환자에 따라 한 시간가량 걸리기도 한다.

세척액으로는 일반 온수 또는 미네랄 정제수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또한 커피액이 장의 점막을 안정시켜 대장암의 발생을 줄이고 세척 효과를 높인다는 이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일부 병원에서는 숯 또는 죽염을 녹여서 사용하며 유산균제재와 항산화 제재, 비타민 등 영양 제재를 함께 넣기도 한다.

▽효능 논란=대체의학, 한의학자 등 장세척 옹호론자들은 장의 내벽에 오랫동안 달라붙어 딱딱하게 굳어진 이른바 ‘숙변’이 변비 복부비만 설사 치질 등 대장질환, 만성 소화불량 등 위장질환, 기미 여드름 아토피 등 피부질환을 발생시킨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또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심근경색, 동맥경화, 뇌졸중, 간암, 직장암 등의 질환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장세척을 통해서라도 숙변을 빼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세척 반대론자들은 원칙적으로 ‘숙변’이란 개념을 부정한다. 지속적으로 대장운동을 통해 변을 배출하기 때문에 오래 돼서 딱딱하게 굳는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이들은 대장 속에는 항상 변이 존재하며 일부러 장세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장세척이 아직 의료행위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부 효과를 봤다는 임상적인 증거가 있다고 해도 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한 논문이나 과학적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할 것인가, 말 것인가=장세척 옹호론자들도 살을 빼거나 피부상태를 개선하려는 목적이라면 신중할 것을 권한다. 대통령 한방주치의인 경희대 의대 한방재활의학과 신현대 교수는 “변비환자의 경우 초기에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주치료 요법으로 장세척을 선택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장세척 요법을 시술하고 있는 한 의사도 “환자에 따라 일시적인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식사요법이나 운동요법을 병행하지 않으면 효과는 사라져 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세척 광고가 남발한 게 원인이겠지만 이를 맹신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장세척을 먼저 요구하는 환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예 장세척을 받지 말 것을 주장하는 의학자들도 적지 않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명승재 교수는 “일시적인 효과를 믿고 장세척을 하게 되면 습관성이 될 우려가 크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장세척은 문제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태일 교수도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장세척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임의로 장세척을 하면 장의 운동 불균형을 초래해 소화기능 악화, 잦은 설사 유발 등이 우려되며 심하면 탈수증, 배변장애까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대장 튼튼하게하는 생활습관 4계명▼

장을 튼튼하게 하려면 올바른 생활습관이 가장 중요하다. 의학자들은 평소 야채를 많이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기만 해도 변비,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대장질환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온화한 생활을 하라=스트레스는 대장 질환 뿐 아니라 만병의 근원. 화를 내지 않고 절제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어떤 운동을 하느냐는 크게 상관없지만 1주일에 3회 이상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도록 한다.

▽가려먹어라=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이 좋다. 채소류와 과일류를 평소에 많이 먹도록 한다. 하루에 8잔 정도의 물을 꾸준히 마셔도 변비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과음과 폭식, 흡연은 장을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

▽대변보는 습관을 들여라=‘느낌’이 있을 때 화장실로 직행하고 평소 규칙적으로 변을 보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대변을 볼 때는 신문, 잡지를 읽지 말고 용변을 보는 데만 몰두해야 한다.

▽항문운동도 좋다=항문이 막혀 변이 잘 안나오는 사람들은 평소 항문에 힘을 줘 오므리는 ‘케글운동’을 하면 좋다. 특히 변이 찔끔찔끔 새는 사람들은 이 운동을 하면 근육이 두꺼워져 힘이 생기므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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