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가슴에 근조(謹弔) 흉장을 달고
마음깊이 애도하며 출근하지만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뭐 하나 할 수 없었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부상자들에게
따뜻한 물 한모금 대접하지 못하고
비통에 잠겨있는 유족들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 한마디 못했으며
사고현장과 합동분향소에 기껏 국화꽃 한 송이를 바쳤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는 죄인입니다.
무심한 시간은 흘러 때 이르게 매화가 피어나도
보고 즐거워 할 님들이 없으니
이 봄이 오히려 황량하기만 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엄마 나 살려줘’ 라고 절규하던
소녀의 애틋한 목소리가
가슴 깊은 곳에 남아 날마다 메아리 칩니다.
억울해서 떠나지 못한 님들의 영혼인가
중앙로역 부근에는
아직도 매케한 냄새가
당시의 고통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생지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의거,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흐름을 바로잡은 위대한 선조들이 지켜왔던
자랑스러운 대구.
지금처럼 대구시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부족한 것은 메꾸고
넘치는 것은 자제하여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
이 난제를 반드시 해결하여
대구, 다시 일으켜 세웁시다.
돌아가신 분들과
고통받고 있는 분들과
슬픔에 잠겨있는 유족들께
아무 보탬도 되지 못하는
나는 죄인입니다.
이정웅 대구시 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