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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리포트]美과학영재, 열정이 남달랐다

입력 | 2003-03-20 18:09:00


뉴욕 브롱크스 과학고교에 다니는 중국계 장이첸(17·여)과 브루클린 기술고교생인 구 소련 몰도바 출신 안나 게커(17·여)는 11일 2만달러씩을 벌었다. 상금으로 받은 돈이다. ‘인텔과학재능발굴(Intel Science Talent Search)’이 주관하는 고교생 과학경시대회(www.sciserv.org/sts/) 결선에서 받은 상이다.

장양은 고교생이면서도 컬럼비아대 공중보건대학에서 바퀴벌레의 알레르기 물질에 관해 연구해 8위를 차지했다. 게커양은 친지의 면회가 갱생시설 환자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연구한 리포트로 9위에 올랐다.

경시대회는 미국 내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다. 총 100만달러의 상금이 걸린 ‘주니어 노벨상’이기 때문이다. 1942년 시작된 오랜 역사의 상인 데다 매년 40명씩 선발되는 결선 진출자들이 미국의 과학 및 수학을 이끌어나가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서 로얼드 호프먼(1981년·화학)을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가 5명이나 나왔다. 또 유수한 과학 및 수학상을 100개 이상 차지했다.

62회인 올해 경시대회는 전국에서 2000명의 고교생이 예선에 나서면서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결선 진출자를 뽑을 때는 저명한 과학자들이 연구물을 놓고 연구의 독창성과 과학적 탐색, 추론 과정을 중점적으로 본다. 요즘 학생들이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환경과학, 세포생물학, 사회 행동, 컴퓨터과학 등. 40명의 결선 진출자의 명단이 발표되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는 천재 과학자가 탄생한 것처럼 환영하기도 한다.

결선진출자에는 뉴욕시의 5명을 포함해 뉴욕주 학생 20명이 끼었다. 뉴욕의 한국계 학생이 처음으로 결선에 진출해 뉴욕 교포사회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폴리머(고분자 화합물)가 잘 섞이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한 뉴욕 하프할로힐스 고교생인 최혜연양(18)이 주인공이다. 이 연구를 위해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실험실을 찾기도 했던 최양은 그러나 10위 내 입상은 하지 못했다. 상금은 5000달러를 받았다. 이번 대회 준결승 진출자 300명 가운데 한인은 7명이었다.

결선심사는 일주일간 워싱턴에서 열린다. 해당분야의 저명한 과학자들과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되는 심사에서 학생들은 왜,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해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과학 영재들은 연구결과를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표현하는 방법도 배운다.

재미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알아주는 과학 영재들 스스로는 ‘보통 사람들처럼 호기심을 갖고 차근차근 연구한 것 뿐’이라고 여긴다는 점.

할머니가 환자에게서 소변을 뽑아내는 기구를 통해 감염된 것을 알아낸 이브라힘 모하메드(17)는 개량된 항균 코팅방법을 연구해 결선에 진출했고 연구결과물에 대해선 특허를 신청해놓고 있다. 모하메드군은 “사회의식을 갖고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뉴욕주 매튜 크롤(17)은 여자 친구가 진드기 박테리아에 감염돼 관절염을 앓고 수술을 하는 바람에 음악활동을 포기하게 되자 박테리아의 감염과정을 연구해 예방에 도움을 주는 정보를 찾아냈다. 크롤군은 “천재가 하는 연구가 아니었다”면서 “열정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인 피츠버그대 앤드루 이거는 “결선진출 학생들은 매우 특이한 재능을 갖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을 남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결선에서 1위를 차지해 10만달러의 상금을 받은 플로리다의 제이미 엘리스 루빈(16·여)도 시한부 삶을 사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면서 감염에 관해 연구하게 됐다. 그는 많은 환자가 칸디다균 등에 감염돼 고생하는 것을 보고 대학 실험실 등을 돌며 발병과정을 연구해 유독인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 결선진출자들의 면면을 보면 역시 공부를 잘한다. 루빈양을 비롯해 상당수 학생이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서 만점을 받았다.

공부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잘한다’는 학생들이 그렇듯 이들의 75%가 무엇인가 악기를 능숙하게 다룬다. 60%는 영어 이외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55%는 자원봉사 활동에 열심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백파이프 연주, 볼룸댄스, 오페라, 재즈피아노 등의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루빈양도 학교에서 크로스컨트리 팀과 피아노, 연극반에서 활동하고 있다. 4개국어를 하는 모하메드군은 시를 쓴다. 최양은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이 경시대회는 냉장고 제조업체인 웨스팅하우스가 시작했다. 57년간 대회를 후원해온 이 회사가 1995년 CBS 방송을 인수해 미디어 기업으로 변신한 뒤 1998년 후원기업이 바뀌었다. 대회 주최측이 후원기업 모집 공고를 내자 마이크로소프트, 엑슨, 타임, 뉴욕 타임스 등 76개 기업과 뉴욕의 부동산 재벌 새뮤얼 르프랙 등이 신청서를 냈고 그 중 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이 선정됐다.

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