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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마이크 인생 40년 맞은 김동건 아나운서

입력 | 2003-03-17 18:09:00


《온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김동건(金東鍵·65) 아나운서가 방송 생활 40년을 맞았다. 1963년 3월 연세대 재학중 동아방송 수습 아나운서로 방송계에 입문한 그는 동양방송(TBC)과 KBS를 거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했고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지금도 KBS ‘가요무대’와 KBS위성TV에서 대담 프로그램인 ‘리얼토크’를 진행하고 있다.40년 방송 인생에 대한 감회를 묻자 그는 “운이 좋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잘난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이 시대의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고 40년이나 봐 줬다는 건 정말로 고마운 일이지요. 40년이란게 원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하루하루 좋아서 하다보니까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나운서는 대화의 징검다리

그는 타고난 아나운서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말을 잘하고, 노래도 잘했다.

그가 아나운서의 꿈을 갖게 된 것은 집에 있던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를 듣고서부터. 그는 이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연세대 3학년때는 대학 방송 최초로 무선FM 단파를 사용한 방송국(YBS)을 개국하기도 했다.

동아 방송과의 인연은 1963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아방송이 개국을 하면서 아나운서 실장으로 영입된 전영우(현 수원대 교수)선배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KBS에 두번 시험을 쳤지만 재학생이라는 이유로 탈락했었는데, 다행히 합격을 하고 월 4000원을 받는 수습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디선가 ‘아나운서는 춥고 배고프다’는 말을 듣고 말리셔서 ‘3년만 해보겠다’며 시작한 일이 40년을 했습니다. 그때 동기가 8명중에 남은 건 저 하나에요.”

그는 1964년 동양방송(TBC)으로 옮겼다가 1973년부터 KBS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맡은 프로그램만해도 수백개를 넘는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게 없다고, 사람들은 대개 큰 프로그램이나 오래한 프로그램을 기억하는데 아나운서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죠. 가요무대처럼 18년 한 프로그램이나 1년하고 그만둔 프로그램이나 똑같이 애착이 있어요.”

지금까지 2주를 아파서 쉰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방송을 펑크낸 일이 없다.

“1975년 KBS에 있을 때 유사 장티프스에 걸려 평생 처음 혼이 났어요. 그때 2주일쯤 동료가 대신해줬는데 그 때 말고는 아프거나 사고로 방송을 중단하거나 쉬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 복받았죠.”

그의 ‘MC론(論)’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있어도 안되고, 없어도 안되는’ 그런 존재, 편안하게 사람들의 대화를 이끌고 연결해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MC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이나 장관처럼 권력이 막강한 사람도 아니에요. 그저 평범한 사람이지 ‘스타’가 아닙니다. 요즘 후배중에서는 연기도 하고, 코미디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정도지요.”

그가 ‘국민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것 이외에 더 좋은 방법이 없어요. 자기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아무리 좋은 질문을 던져도 딴 청을 피우면 얘기할 기분이 나지 않는 것처럼요. 사회자가 너무 경박해도 안되겠지만 눈물이 날 때 그냥 울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더 좋구요.”

●아직도 할 일이 많다.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다닌 것은 제법 됐어요. 언제, 어떻게 아름답게 은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거죠. 지금 생각에는 가요무대가 20년쯤 됐을 때 그만둘까 생각도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구요. 수용소의 하루를 그린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 마지막 구절이 ‘오늘같은 날을 10년 살았다’에요. 그렇게 10년이 아니라, 하루하루 좋아서 40년을 살았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방송을 하는 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서두르지도 말고 쉬지도 말라’는 말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왔는데,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생방송의 달인' 뒷얘기들…▼

김동건 아나운서는 특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나 이산가족찾기, 수해방송, 북한특별공연 등 KBS의 ’특별 생방송‘ 진행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가요무대’와 ‘11시에 만납시다’ 의 뒷얘기를 들어봤다.


▽가요무대=18년간 20여명의 PD가 거쳐갔고 해외 동포를 위한 공연도 7차례나 됐다. 방청접수는 2시간이면 550석이 모두 동난다. 몇년 째 같은 자리에서 방청하며 제작진에게 껌, 과자 등을 선물하는 ‘껌할머니’도 빼놓을 수 없는 얘기거리다. 18년간 유일하게 김동건 아나운서와 김강섭 악단장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노래를 좋아하고 특히 트로트를 좋아한다”며 “장년층이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는 현실에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노래와 사연을 소개하는 게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아나운서의 18번은 ‘반달’.


▽11시에 만납시다=10년간 장수하다 92년 막을 내린 11시에 만납시다는 성공한 한국 토크쇼의 전형. 정치인, 석학, 종교인 등 사회 저명인사에서 농부, 구두닦이 등 보통사람에 이르기까지 2000여명이 출연했다. 하루에 2∼3회분을 한꺼번에 녹화를 하기 때문에 대본을 빨리 외우는 것 보다 먼저 녹화한 대본을 빨리 잊어버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