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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임채청/‘권악설’과 檢 亂

입력 | 2003-03-11 18:54:00


딱 40년 전 박정희 정권이 출범했을 때도 서열과 순혈(純血)을 중시하는 검찰조직을 뒤흔든 인사가 있었다. 박 대통령이 사단장 시절 법무참모였던 군법무관 출신인 36세의 신직수씨가 검찰총장에 임명된 것이었다. 전역 당시 신씨의 계급은 소령. 판사 출신인 46세의 강금실 법무부장관보다도 파격이었다.

강 장관이 취임하자 한 법원장이 사석에서 “여군중령이 참모총장이 됐군”이라고 말한 것도 그때의 혁명적 상황에 빗댄 것이었다. 다만 그때는 검찰의 집단반발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식의 검찰대응이 옳다, 그르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검찰이 왜 또 ‘혁명의 대상’이 됐는지는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군사독재 시절 ‘육법당’이라는 말이 있었다. 성골인 육사출신에게 진골인 율사출신이 체제논리를 제공하면서 권력을 할애받은 것에 대한 야유였다. 물론 검사출신이 큰 몫을 했다. 80년대 중반 한 검찰 고위간부의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언론에서 검찰을 정권의 주구(走狗)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검찰도 정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군사독재가 정점에 달했던 80년대 초 노무현 대통령은 투사가 됐다. 변호사로서는 드물게 투옥된 경험도 있다. 또한 그의 핵심참모들 중에도 비슷한 사람이 많다. 재야시절 이들에게 ‘무도한 권력’은 악(惡)이었고, 검찰은 그 첨병으로 각인됐을 것이다. 반대로 당시 체제논리에 충실했던 검찰은 실정법을 위반한 이들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평검사들과의 토론회에서 “검찰에 구속되고 감옥간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열었다고 포상 받고 대통령과 참모가 된 게 현실 아니냐”며 그러한 인식의 일단을 내비쳤다. 답변 중에 나오는 ‘비하’ ‘모욕감’ ‘비아냥’ 등의 표현에선 피해의식도 읽을 수 있었다.

‘법무부의 문민화’ 역시 반독재 투쟁 시절의 정서가 묻어 있다. 이를 내걸고 취임하자마자 대대적인 검찰 물갈이에 착수한 강 장관을 일부 검사들이 ‘점령군’처럼 느낀 것도 불행했던 과거에 뿌리를 둔 거부감의 발로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센 집단인 정치권과 검찰은 서로를 가장 인정하기 싫어하는 존재들이다. ‘선출된 권력’과 ‘자격증 권력’은 서로의 오만과 특권을 탓하면서 상대방을 개혁의 최우선순위로 꼽곤 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의존하고 이용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부정직한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다.

정권이 바뀌어 과거 대척점에 있던 두 세력이 한 배를 타게 되면 정-검(政-檢)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입장에서 보면 양쪽 다 오십보백보인 권력집단이기 마련이다. 권력의 타락을 신물나게 경험한 국민에게 권력은 본디 선할 수 없다는 ‘권악설(權惡說)’이 통념화된 지 오래인 것이다.

그런데도 도취한 권력은 ‘권선설(權善說)’의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점에서 권력집단간의 갈등은 때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일방적 제압과 굴복으로 갈등을 억지로 묻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정-검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탈선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권력의 정상적인 분화(分化)’가 가장 건강하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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