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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검은 물 밑에서'… 물소리,공포는 시작되다

입력 | 2003-02-20 18:18:00

‘검은 물 밑에서’ 사진제공 프리비젼


귀신을 공포가 아니라 연민의 대상으로 그리는 것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특기다. 영화 ‘링’에서 초능력 때문에 비운의 일생을 살다 우물에 빠져 죽은 소녀 야마무라 사다코처럼 영화 ‘검은 물 밑에서’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죽어간 유치원생 가와이 미츠코에 대한 한편의 위령제같다.

이혼녀 마츠바라 요시미(구로키 히토미)는 딸 이쿠코와 함께 낡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천장의 검은 물자국이 날이 갈수록 번져가고 이쿠코가 주워온 빨간색 가방이 버려도 버려도 요시미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그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요시미는 이쿠코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빨간색 가방을 맨 소녀의 그림을 보고 그녀가 2년전 실종된 가와이 미츠코임을 알게 된다. 미츠코는 요시미의 윗집에 살던 소녀다.

이 영화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괴물이나 잔인한 살인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공포를 건져내 긴장을 고조시킨다. 천장에 물이 새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 있으나 심약하고 예민한 요시미의 육감을 통해 ‘그 이면에 뭔가 있을 지 모른다’는 공포를 증폭시킨다.

시종일관 퍼붓는 빗줄기와 적막 속에 세숫대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등 이 영화 전편에는 축축하고 눅눅한 물의 이미지가 관류하고 있다. ‘링’에서 우물이 이승의 인간과 저승의 혼령을 이어주는 매개였듯, 이 영화에서도 물은 요시미 모녀와 이쿠코를 연결하는 통로다.

공포 영화에서 공포의 대상은 ‘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보듬어 안아야 할 대상이다. 영화 마무리 대목에서 모성에 대한 감성적 묘사가 지나쳐 영화 내내 팽팽했던감정선이 맥없이 풀어져 버리는 게 아쉽다.

영화 ‘링’의 원작을 썼던 소설가 스즈키 고지가 이번 작품에서 다시 한번 나카다 히데오 감독와 호흡을 맞췄다. 원제 ‘仄暗い水の底から’. 12세 이상 관람가. 21일 개봉.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