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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피플]'국화꽃 향기'순애보 연기…'박해일'

입력 | 2003-02-20 18:10:00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처연한 눈빛연기를 보여준 영화배우 박해일. 관객에겐 아직 낯설지만 연극 무대를 기반으로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온 '중고 신인'이다. 김미옥기자


《신인 배우 박해일(26)이 주는 인상은 식물성이다. 가늘고 긴 몸집에 울림이 좋은 목소리,불안하고 슬픈 듯한 기운과 차분함이묘하게 뒤섞인 눈빛. 여러 결의 감정을 동시에 지닌 듯한 분위기 때문일까. 갓 영화배우가 된 신인 치고박해일의 연기 스펙트럼은 꽤 넓다.》

반항기 많은 고등학생(‘와이키키 브라더스’)부터 애인을 빼앗기고 질투에 사로잡힌 대학원생(‘질투는 나의 힘’), 살인 용의자(‘살인의 추억’)를 연기하더니, 28일 개봉되는 영화 ‘국화꽃 향기’(감독 이정욱)에서는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수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질투는 나의 힘’과 ‘살인의 추억’이 개봉되지 않아 관객들에겐 낯설지만, 영화계에서는 그를 주목하고 있다. 동아일보 문화부가 설문 조사한 ‘프로가 뽑은 우리 분야 최고’에서도그는 ‘가장 주목할만한 신인 배우(남)’ 3위에 올랐다.

‘국화꽃 향기’는 100만 권이 팔린 같은 제목의 소설이 원작. 울리려고 작정한 ‘최루성’ 소설에 비해 영화는 신파를 걸러내고 상당히 절제된 톤으로 이어진다. 시나리오 작가 김희재가 솜씨좋게 다듬은 대사와 군더더기 없는 에피소드들이 장진영과 박해일의 고른 연기에 실려 전달된다.

“영화에 현실성이 있을지, 동화 같지는 않아야 할텐데… 그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담담해요. 영화가 개봉되면 실체가 드러날 테니까. 주변의 기대에도 어떤 말보다 영화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0년 연극 ‘청춘예찬’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을 탄 박해일의 첫 무대는 97년 아르바이트 삼아 응모한 아동극 ‘백설공주’ 뮤지컬이었다.

“배우가 부족해 왕자가 나타나면 난쟁이 한 명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 설정”하고 난쟁이와 왕자 1인2역을 맡았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의 소개로 성인극단으로 옮긴 뒤 ‘청춘예찬’을 본 임순례 감독의 제의로 영화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연극에서 영화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진지하게 설명하던 그에게 불쑥 ‘배우로서 자기 단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웃지도 않고 심각하게 “머리가 나쁜 거요”하고 대답한다. 그럼 장점은?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 겸손하다는 말은 들어요.”

‘국화꽃 향기’ 시사회장에서 무대 인사를 할 때도 “너무 떨린다” 등 상투적 인사말 대신 “나갈때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잘 확인해 보세요”라며 웃길 때도 그의 목소리는 진지함이 묻어 있다.

“아직 모자란 게 너무 많고 갈 길이 멀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던 그의 꿈은 ‘캐릭터 배우’다.

“뭐든 다 잘하긴 어렵잖아요. 내 것을 찾아봐야죠. 나중에 ‘쓸만한 캐릭터 배우’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사진제공 태원엔터테인먼트

■'국화꽃 향기'는

대학 동아리 여자 선배 희재(장진영)를 짝사랑하던 인하(박해일)는 천신만고 끝에 희재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하고 결혼한다. 마침내 기다리던 아기를 갖게 됐을 때 재희는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 몸에서 죽음과 생명이 동시에 자라는 아이러니 속에 재희는 생명을 택하고 아이를 낳다 숨을 거둔다.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