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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민병돈/‘민족공조’는 속임수일 뿐이다

입력 | 2003-01-29 19:03:00


북한 신문의 신년 공동사설이 ‘민족공조’를 강조하더니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한 북측 대표도 우리를 향해 ‘민족공조’를 외쳐댔다. 민족이란 말은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민족감정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가슴에 쉽게 불을 붙여 투쟁에 나서게 한다. 국가나 민족간의 갈등이나 분쟁에 국민을 동원하는 데 민족감정만큼 효력이 탁월한 게 없다.

지난날 우리의 항일투쟁에서 바로 이 민족주의가 원동력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스라엘(유대) 민족주의는 국제적 유랑민인 유대인들을 ‘약속의 땅(팔레스타인)’으로 불러모아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공화국을 세웠다. 1900년 만의 재건국이다. 그러나 독일 민족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 주고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민족주의의 양면성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통일전선전략에 바로 이 민족주의를 잘 이용한다. 공산주의는 근본적으로 국제주의이지 민족주의가 아니다. 공산당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들에게는 민족이 아니라 ‘계급’이 중요한 것이다. 그들이 ‘민족’을 부르짖을 때는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2차 대전 때 스탈린이 ‘슬라브 민족주의’를 이용한 바 있고, 중국의 국공(國共) 내전 때 마오쩌둥(毛澤東)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를 상대로 한 통일전선전략으로 중국 대륙을 석권했다. 외세 일본에 대항하는 민족공조 명분의 제1, 2차 국공합작이 그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바로 그 짓을 한다는 것이다. 고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단군릉’이란 것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향해 끈질기게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며 민족적 정통성이 자기 쪽에 있음을 주장한다. ‘외세공조’ 하지 말고 ‘민족공조’ 하자고 한다.

이러한 저들의 통일전선전략에 말려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동조하는 것인지 우리 내부의 일각에서도 요즘 ‘민족우선’ ‘민족공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민족(남북)끼리 공조해 미국을 상대로 핵문제도 해결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살려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통일하자고 한다. 가슴에 와 닿는, 듣기 좋은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물론 주한미군은 당연히 제 나라로 돌아가야 하고…. 참으로 속 들여다보이는 술책이다.

그런 자칭 민족주의자들이 1950년엔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고 남침을 했다니…. 지난해 6월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우리 구역에서 경비 중이던 남측 해군 함정을 기습 공격해 25명의 사상자를 낸 만행은 또 뭔가. 휴전선 일대에서 우리를 겨누고 있는 중화기들과 100만 병력은 또 뭔가. 저들은 이미 같은 민족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동안 저들의 남침과 대남 도발들을 우리가 물리친 것은 ‘민족’보다 ‘국가’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민병돈 전 육사교장·예비역 육군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