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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208…몽달귀신(10)

입력 | 2002-12-27 18:09:00


벼랑 바깥쪽까지 몸을 쭉 내민 호두나무의 늘어진 가지가 채찍처럼 흐느적거렸다. 우철은 호두나무 가지를 잡고 용두목을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으로 비가 쏴-쏴- 빨려 들어가고 있다. 혀가 입 안 가득 부풀어올라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우철은 몸을 푸르르 떨고는 허리를 뒤로 당기면서 일어섰다. 어머니에게 뭐라 말해야 하나, 우철은 비 냄새밖에 나지 않는 대기를 숨쉬며 오열하였다. 두꺼운 비의 커튼 너머에서 밤이 밝아오면서 비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는 회색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닭도 참새도 울지 않았다. 울고 있는 것은 진흙탕 속에 우뚝 선 우철뿐이었다.

밥상에는 콩나물밥, 대구탕, 배춧속 범벅, 배추김치, 깍두기가 놓여 있다.

우근은 숟가락으로 대구의 이리를 떠서 입에 넣고는 “맛있다”며 엄마에게 웃는 얼굴을 보였지만, 엄마의 눈빛이 퀭한 것을 알고는 자기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이번에는 “맛있다”며 불안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옆얼굴을 보았다.

“그래.” 용하는 입을 움직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왔다!” 대구탕을 뜨려던 희향이 숟가락에서 손을 떼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예.” 인혜가 귀를 곧추세웠다.

“봐라, 돌아왔다.” 숟가락이 탕 속으로 가라앉고, 희향은 일어섰다.

저벅 저벅 저벅, 빗소리에 섞여 사람 발소리가 다가왔다. 희향이 문을 열자 온 몸이 푹 젖은 우철이 마루로 올라왔다. 희향과 용하와 인혜의 눈은 우철의 손에 들려 있는 책보에 고정되었는데, 우근은 날아오르기 직전의 참새처럼 폴짝 움직여, 형의 도롱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고 있다.

“용두목 근처 밤나무에 걸려 있었습니다. 강에 떨어진 기라예.” 우철은 입술에서 목소리를 짜냈다.

희향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두 손을 심장으로 가져갔다.

“벼랑으로 떨어진 흔적도 있었고….”

희향의 입에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희향을 막으려는 때, 책보가 풀리면서 송이밤과 물을 빨아들여 부푼 수신책과 국어교과서, 빨간 헝겊 필통, 양은 도시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