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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문명호/장미전쟁

입력 | 2002-12-13 18:31:00


장미는 ‘꽃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사랑받는 꽃이다. 인류는 기원전 2000년경 이전부터 장미를 재배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는 물론 중국에서도 장미가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벽화 등을 통해서 확인된다. 처음에는 야생의 장미를 향료나 약용으로 쓰기 시작해 차츰 관상용으로 재배하게 됐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상류층의 장식용으로 인기를 모았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연인인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를 위해 자신의 궁전 바닥을 수많은 장미꽃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아마 ‘불타는 사랑’ 또는 ‘열정’이라는 꽃말을 지닌 붉은 장미가 아니었을까.

▷중세 유럽의 왕가나 귀족 가문에서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에 장미 문양을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영국에서는 15세기 장미 문장을 사용하던 두 귀족 가문이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30년간 전쟁을 벌였다. 역사가들은 이를 두고 장미전쟁이라고 부른다. 붉은 장미 문장의 랭커스터가와 하얀 장미 문장의 요크가 사이에 벌어졌던 이 전쟁은 랭커스터가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헨리 튜더는 아예 요크 가문의 여인과 결혼, 왕위 계승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두 장미간의 전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독일과 한국간에 6년에 걸쳐 진행된 ‘장미전쟁’이 최근 사실상 종결되었다. 대법원은 12일 독일의 육종회사인 코르데스사가 한국화훼협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코르데스사의 승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한다. 코르데스사가 개발한 붉은 장미 품종인 레드 산드라의 상표권을 둘러싼 분쟁에서 한국의 화훼업자들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한국 화훼업자들은 코르데스사가 레드 산드라 상표권을 한국에 등록하기 11년 전부터 이 품종을 재배, 이미 장미 품종의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이 품종에 대한 무제한의 상표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다.

▷한국의 장미 수출은 97년도 10만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1000만달러 규모로 급증했다. 그 주종이 외국에서 개발된 품종들이다. 레드 산드라도 한몫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레드 산드라는 시중에 유통되는 장미 중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는 인기 품목이다. 만약 이 재판에서 패소했다면 국내 화훼업자들에게는 큰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는 추세에서 장미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개발한 품종이 많지 않으면 국제시장의 장미전쟁에서 승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명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