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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의 산사이야기]범종소리 "뎅~뎅~"…산불 났어요

입력 | 2002-12-06 17:49:00

한 스님이 소화전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 현진스님


점심 공양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데 때 아닌 종소리가 다급하게 울리는 게 아닌가. 종각으로 뛰어가 보니, 한 스님이 운판(雲版·예불과 공양 시간을 알리는 구름 모양의 청동판)을 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범종이 울리면 스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리는 열반 종소리지만, 때아닌 때 운판이 울리면 이것은 일종의 사이렌이다. 한마디로 불이 났다는 비상벨 소리인 것이다.

재빨리 산불 발생지점이 파악되었고 서둘러 진화요원이 출동하기로 했다. 이런 일은 산중 전체가 비상이나 다름없다. 먼저 군대의 ‘5분 대기조’ 출동하듯 학인(學人) 스님들이 트럭에 올라 산불 발생 지역으로 달려갔다. 뭐니 뭐니 해도 산불 진화는 발빠른 젊은 학인 스님들이 소방대원 몇 사람의 몫을 하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지니는 진화 도구는 갈퀴와 괭이 낫 등이다. 산불이 발생하면, 막무가내로 불을 끄려고 달려들어서는 불길이 잡히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기 때문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이럴 땐 갈퀴나 괭이로 낙엽을 걷어 내거나 땅을 파서 소방 길을 만들어주면 불길이 더 이상 능선을 넘지 못한다. 불을 따라다니면 밤새 고생만 하지만 불길을 보고 미리 소방 길을 만들면 진화가 쉽다.

해인사는 지금까지 산불이 수없이 발생하였다. 60년대와 70년대는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그때는 ‘산감’이라는 소임이 정해져서 매일처럼 산에 올라 벌목하는 자와 산불을 감시하는 두 가지 일을 하였다고 한다.

산불이 나면, 어른 스님들은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을 하지만 젊은 스님들은 은근한 스릴과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무슨 작전을 감행하듯 신속하게 진화하는 일은 땀이 흐르는 긴장의 시간이지만, 다 꺼지지 않은 불씨로 인해 2차로 발생하는 산불을 막기 위해 산 속에서 밤샘지기 하는 일은 젊은 날의 소소한 추억이 되는 까닭이다. 또한 밤새 산불을 잡고 동이 틀 무렵 숯검정이 된 얼굴을 서로 쳐다보면서 배를 잡고 웃는 것도 산불 현장에서나 가능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번 산불은 허위 신고로 판명되어 한차례 소동으로 끝났다. 백련암 아래쪽 지점에서 연기가 발생하였다고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산불은커녕 모닥불 피운 흔적도 없었다. 아마도 신고자가 산등성이에 걸린 안개를 연기로 착각하였나보다. 비록 소동으로 그쳤지만 정말로 멋진 산불 진화 훈련을 한 셈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h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