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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음악]PC통신 고전음악 동호회

입력 | 2002-12-03 19:09:00


태초에 아르파넷(ARPAnet)이 있었다. ‘가상공간’의 탄생이었다. 그 뒤 비트넷(BITNET)을 포함한 여러 네트웍이 생겨났다. 지금은 인터넷 세상이다. 초고속 통신망이 각 가정마다 들어오는 시대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비트넷’을 처음 접했다. 네트워크 접속엔 ‘다이알 업 모뎀’이라는 장비가 사용됐다. 처음 나왔다는 1200BPS 모뎀을 하드 디스크도 없던 컴퓨터에 달아보고, 다른 시스템에 온라인으로 연결해보며 밤을 지샜다.

당시 ‘케텔’이라는 비교적 큰 BBS가 있었다. 같은 취미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무수한 동호회를 설립했다. 그 초창기 동호회 중에 고전음악 관련 동호회도 물론 있었다. 오늘날 ‘하이텔’의 고전음악동호회가 된 곳이다.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모처럼 통신선상에 모여 음악 이야기로 밤을 지샜다. 모차르트의 팬들이, 바그너의 광들이, 바흐의 추종자들이 모여 평소에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음악 이야기를 날마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연휴까지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함께 음악회라도 다녀온 밤에는 열기가 더욱 뜨거웠다. 소문이 퍼지고 더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모여들었다. 급기야는 한 장소에 모여 밤새워 음악을 듣는 만남들이 나타났다. 음악적인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 이루어졌고,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등장했다. 아니, 고수로 성장했다.

마침내 고전음악동호회는 자타칭 음악평론가의 산실이 되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직도 사람들과 더불어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체 못해 음악 관련 학과로 재입학 하는 회원도 있었다. 몇몇은 음악회가 많이 열리는 해외 도시들로 자청해서 유학을 떠났다.

그냥 평범한 음악애호가 뿐만이 아니고, 다수의 전문 음악평자들도 회원으로 합류했다. 더더욱 뜨거운 토론이 이어지고, 음악의 고급 소비자를 자처하는 논객들이 음악의 생산자들에게 이런 저런 주문을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면에서 인터넷에 나타나는 ‘상호성(Interactivity)’의 긍정적인 면을 본다.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온라인 상으로 만나서 교환한 의견들이 문화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본다. 격려와 비판이, 살아있는 느낌과 뉘앙스 속에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전자 민주주의’가 그때 시작되고 있었나 보다. 이제는 무수한 음악동호회들이 인터넷의 웹 페이지들로 존재한다.

잠이 안오고 머릿속에서 음악이 흐르는 밤이면, 창문을 열고 별을 보기보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본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보기 위해서.

송하윤 홍익대교수·전산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