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재판과 관련해 미군기지에 대한 화염병 투척과 난입 시위 등이 잇따르자 주한미군이 장병들의 외출을 통제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6일 주한 미8군에 따르면 미군측은 27일부터 장병들의 오후 10시 이후 외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또 외출할 경우 2인 이상이 함께 다녀야 하고 부대 복귀시간은 평일 오후 11시, 휴일에는 오전 1시로 정했다. 외박은 전면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치는 미2사단 사령부인 경기 의정부시 캠프 레드 클라우드와 여중생 사망사건 재판이 열렸던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등 경기 북부 주요 기지에서 우선 실시된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 등에서 미군 관련 시설에 대한 시위가 잇따르고 있어 외출 통제조치가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6일 오후 1시10분경 대학생과 민주노동당원 등 50여명이 미2사단 사령부 캠프 레드 클라우드에 철책을 절단기로 자르고 들어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쇠사슬로 서로 몸을 연결한 채 “효순이, 미선이 재판 무효”,“살인 미군 처벌” 등의 구호를 외치며 20여분간 시위를 하다 미군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캠프 레드 클라우드 앞에는 경찰 1개 중대가 경비를 서고 있으나 뒤편은 경찰이 배치되지 않아 시위대는 이곳을 통해 쉽게 부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이들에게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또 이날 낮 12시40분경 부산지역 대학생 12명이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 미군 하얄리야부대 앞에서 ‘여중생 2명 죽인 살인 미군 처벌하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부대 진입을 시도하다 전원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의정부〓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미군재판 공정하게 진행”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은 26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고를 일으킨 미군 피의자들에 대한 미국 군사재판의 절차는 공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국민에게 재판이 공개됐고 재판 절차가 공정히 진행된 점을 올바로 인식해 주기 바란다”면서 “주한미군은 많은 한국 국민에게 생소한 미군의 재판 절차를 적극 알려 이해를 돕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성명서에서 미 군형법상 △피고인이 군 판사나 군인들로 구성된 배심원 중 선택해 재판을 받을 수 있게 규정하고 있으며 △배심원은 현역 미군이어야 하고 민간인이나 카투사(KATUSA)는 미 군형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배심원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 군사법 체계에서는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과 ‘책임이 있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면서 “이번 재판에선 피고인들의 형사적 과실이 입증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주한미군은 이날 △미 국무장관, 주한 미 대사, 주한 미군사령관이 사과했고 △유족측에 보상금 1억9500만원씩을 지급했으며 △미군 장병이 2만2000달러의 성금을 모아 전달한 사실 등을 들어 “이미 이번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과 민사 책임을 받아들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시위대학생 유죄판결▼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지난달 초 주한미대사관에서 기습 항의시위를 벌였던 대학생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서울지법 형사단독12부 윤현주(尹賢周) 판사는 22일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미국 정부의 공개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주한 미대사관에 침입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22) 등 대학생 7명 중 김씨 등 4명에 대해 500만원씩의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또 함께 시위에 참여했던 정모씨(21) 등 2명에게는 벌금 300만원씩에 선고유예를 내렸다.선고공판에 불참한 이모씨에 대해서는 내달 6일 선고 공판을 다시 연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1일 낮 12시반경 서울 종로구 미대사관 구내의 담을 넘어 진입한 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인 혐의로 지난달 17일 기소됐다. 이번 판결에 대해 법조계의 한 인사는 “법원이 미대사관 시위와 관련해 구속기소된 학생들에게 벌금형을, 나머지에 대해 선고유예를 선고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며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국내 비난 여론이 반영돼 가벼운 형이 선고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미군에 무죄가, 시위 대학생에게 유죄가 선고된 이번 판결은 양국이 처한 불평등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