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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일병 자살가능성 높다"…법의학자 6명중 5명 주장

입력 | 2002-11-25 23:22:00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韓相範)가 1984년 술 취한 상사에 의해 3발의 총을 맞고 숨진 것으로 8월 발표한 허원근 일병이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법의학자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25일 서울 용산구 국방회관에서 개최한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법의학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법의학자 6명 중 5명이 허 일병이 자살했을 확률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나머지 1명은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참석자들은 이날 허 일병의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난 상처와 총탄에 의한 가슴과 머리 등 3곳에 난 상처의 형태, 3발을 쏴서 자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등에 대해 법의학적인 관점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특히 허 일병의 왼손 검지와 엄지 사이의 상처 및 왼손 손목의 상처와 관련해 허 일병이 상사가 자신에게 겨눈 총구를 막기 위해 왼손으로 총의 소염기를 감쌌을 때 생긴 것인지, 허 일병 스스로 머리를 겨눠 총을 쏘는 과정에서 총구를 지지하다 생긴 것인지를 놓고 양쪽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서울대 이윤성(李允聖) 교수는 “자살자의 대부분은 편안한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M16 소총으로 자살할 경우 대개 턱 밑을 겨냥한다”며 “M16 소총으로 가슴과 머리 등에 3발을 쏘아 자살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북대 이상한(李相韓) 교수는 “드물긴 하지만 3발을 쏴 자살을 시도한 사례는 외국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허 일병의 가슴 부위 두 곳의 상처가 같은 시간대에 난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윤성 교수는 “사건 직후 허 일병의 사진에는 두 상처간 색깔 차이가 있어 가슴의 두 총상간에는 적어도 1∼2시간 이상 시차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한영(李韓榮) 법의과장은 “좌우 가슴의 출혈량이 거의 비슷한 점으로 미뤄 두 상처가 발생하는 데는 시간차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려대 문국진(文國鎭) 명예교수는 “허 일병은 총과 함께 팔을 일직선으로 편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는데 이는 사망 당시의 자세로 시체가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자살자들은 한 번 결심을 하면 숨질 때까지 자살 행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데 허 일병의 경우도 머리에 치명상을 입을 때까지 반복해 총을 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1984년 허 일병이 술 취한 상사에 의해 가슴에 총 1발을 맞은 뒤 부대 인근 폐유류고로 옮겨져 다시 가슴과 머리에 각각 1발씩 총을 맞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허원근 일병 사건 일지▼

△1984년 4월 2일 허 일병, 가슴과 머리 등에 3발의 총을 맞고 숨짐

△2001년 1월13일 의문사위, 허 일병의 의문사 조사 착수

△2002년 8월20일 의문사위, 허 일병이 술 취한 상사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중간조사결과 발표

△2002년 8월27일 국방부 특별조사단, 허 일병 사건 조사 착수

△2002년 9월 10일 의문사위, 허 일병이 내무반과 폐유류고에서 총에 맞아 타살됐다고 최종 결론

△2002년 10월 29일 국방부 특별조사단, 사건 당시 내무반에서 총기오발 사고가 없었다고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