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상정했던 대선에서의 양자(兩者) 대결 가능성이 높아지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간 후보단일화 협상이 막판에 결렬될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일단 두 후보의 단일화를 “DJ컵 결승전” “누가 후보가 되든 DJ정권의 상속인”이라며 ‘DJ양자론’을 확산시키기에 노력하고 있다.
사실 한나라당은 처음에는 단일화 지향점은 정 후보라고 판단했었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단일화는 정몽준 옹립을 위한 청와대의 시나리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일화 합의 이후에는 노 후보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단일화 합의 후 노 후보가 지지층의 재결집 덕분에 여론조사에서 지지도 2위를 탈환하는 등 상승무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분석작업에 착수했다.
한나라당은 우선 정 후보보다는 노 후보가 상대하기가 쉬울 것으로 보고 있다. 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면 진보적 계층과 젊은층 공략이 어려워지는 게 부담이지만, 정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이회창(李會昌) 후보 지지로 돌아서 단일화가 노리는 ‘시너지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한 당직자는 “‘색깔’이 분명한 노 후보가 되면 이 후보는 다수의 안정지향층을 묶어낼 수 있는 데다가 호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고른 득표를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나라당은 정 후보가 단일후보로 나설 경우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의원 등 ‘제3지대’에 있는 정치세력의 동향이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제3세력이 정 후보와 손잡을 경우 수도권과 충청권 판세에 적잖은 충격파를 던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다.
특히 정 후보의 외연 확대가 제2의 정풍(鄭風)으로 번질 경우, 한나라당이 정 후보를 겨냥해 현대의 4000억원 대북 비밀지원설 등의 공세를 펴도 효과가 별로 없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최근 JP가 버티고, 자민련을 탈당한 이양희(李良熙) 이재선(李在善) 의원이 입당한 직후 충청권 지지율이 7% 정도 하락했다”며 “‘JP 대책’을 재검토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현재의 이 후보 지지율을 따라잡긴 어려울 것이라고 당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단일 후보〓부패정권 계승자’ 공세가 먹혀든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단일화 논의로 이슈 주도권을 빼앗긴 것을 적잖은 부담으로 느끼고 있다. 이래저래 한나라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