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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민칼럼]´협상´ 인가 ´협박´ 인가

입력 | 2002-10-28 18:26:00


이런 걸 한번 상상해 보자. 성질 사나운 남편이 엉뚱한 짓을 하다 친척들한테 딱 걸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바람 좀 피웠다. 애도 낳았다. 더 나쁜 일도 일어나게 돼 있다. 어쩔 테냐.” 마음 잡고 살라고 돈까지 거둬주니까 오히려 궁할 때마다 일 저질러 놓고 그걸 볼모로 협박하는 게 습관이 됐다.

물론 이때 최대의 피해자는 아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사느니, 안 사느니’ 펄펄 뛰어야 할 여자가 오히려 친척들을 은근히 핀잔하는 모습이다. “애 낳은 걸 봤나? 왜 거두절미하고 사람 몰아붙여. 윽박지르지 말고 대화로 해야지. 오죽 외로웠으면 그랬겠어.” 간도 쓸개도 없는 너그러움에 우리는 감탄한다.

▼북핵 시인에도 태연한 南▼

요즘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반도 주변의 분위기가 대충 이런 식이다. 그들이 우리와 맺었던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어겼다고 제 입으로 시인했는데도 분위기는 이상하게 돌아간다. 핵무기를 안 만들 테니 그 대신 부족한 전기를 달라고 해 이 순간에도 북한 신포지구에서는 우리 돈으로 원자력발전소들이 건설되고 있지만 그들은 뒤편에서 또 다른 협상을 위한 볼모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쪽 정부는 역정 한번 제대로 내는 모습이 아니었다.

대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대화’라는 단어는 사용하는 시점과 벌어진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모순적이고 기만적인 의미로 탈바꿈하는 존재인가. 저지른 잘못에 사과도 않고,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요구하는 대화는 그 이익이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간악한 사술에 불과하다. 대화라는 게 신뢰를 밟고 서 있는 발판의 높이가 같아야 이뤄질 수 있는 법인데 약속 어기고 계속 거짓을 말하는 입과 상대해야 하는 것은 공허한 노동일 뿐이다.

협상이란 것도 그렇다. 악수하던 손을 꺾어 발로 밟은 채 요구하는 협상이라면 결단코 마주 앉아주면 안 된다. 칼을 들고 협상을 주장할 때 그것은 더 이상 협상이 아니라 협박일 뿐이다. 핵무기를 들먹이며 협상을 주장할 때마다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 한다면 지구덩어리 전체를 준다 한들 끝이 날 일인가.

그런데도 ‘정권의 친구’들은 묘한 논리를 들이댄다. 그동안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빠짐없이 해대던 소리가 ‘그러면 북한과 전쟁을 하자는 것인가’였다. 말하자면 ‘흰색을 좋아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별로’라고 대답하면 ‘왜 당신은 흰색 대신 검은색을 원하는가’ 하는 식이다. 이런 논리적 허구를 그들은 수치심도 없이 내뱉는다. 흰색과 검은색만 있는 것이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지만 의도가 순수하지 못할 때 말은 이렇게 교활해질 수 있다.

94년 북한이 핵을 들먹이며 자유진영을 협박했을 때 미국은 순진하게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합의해 ‘울면 사탕 주더라’는 환상을 각인해 주었다. 그때 미국이 핵발전소를 지어주고 기름을 퍼주기로 북측과 합의했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돈까지 미국이 부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46억달러, 미국은 이 가운데 70%인 32억2000만달러를 우리 부담으로 떠안겼다. 그래서 벌써 9000억원 가까운 우리의 세금이 북한의 핵발전소들을 지어주는 데 소리도 없이 흘러들어갔다. 끝까지 가려면 5조원 가까운 돈이 퍼부어져야 한다. 그렇게 했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새 협상이 이뤄지면 우리는 또 무엇을 얼마나 더 주어야 한단 말인가.

▼따질줄 아는 정부 선택해야▼

북한의 고집과 미국의 의지로 북핵 문제는 가까운 시일 안에 곱게 타결될 전망이 안 선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혹독한 겨울을 경험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구상에서 북한에 가장 우호적 존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그들이 겪을 고통이 안쓰럽겠지만 겨울이 깊어질 때 DJ 자신도 떠나야만 한다.

그때쯤 우리는 일본 정부가 보여줬던 것처럼 북한에 대해 따질 건 따지고 줄 건 주는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의 정부를 갖고 싶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그런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허전한 과거를 스스로 보상받는 길이다. 겨울을 빨리 건너뛰고 싶은 마음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이규민 논설위원실장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