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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경제개혁 3개월]평양 곳곳 거리매점…"더 팔고 더 벌자"

입력 | 2002-10-08 18:14:00

4일 평양시 평양금강산판매소의 여성판매원이 대표단 일행에게 물건을 팔고 있다. - 평양=신석호기자


《북한의 ‘7·1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남북 대화 재개와 북-일, 북-미 회담, 신의주 특별행정구 지정 등 역사적 사건들이 이어졌다. 북한에서는 임금 인상, 사업장책임제와 인센티브제 도입 등으로 직장과 가정 경제 생활이 바뀌고 있다. 7월초 북한을 방문했던 동아일보 경제부 신석호기자가 10월1일부터 4박5일간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옛 한국이웃사랑회·회장 이일하)의 방북대표단과 함께 다시 변화의 현장을 다녀왔다.》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직후 평양 시내의 한 협동농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공무원이나 군인들이 나가서 김매기를 도와주어야 했다. 그런데 올해는 농장 사람들이 스스로 하겠으니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다.

전보다 많이 생산하고 비용을 줄이면 자신의 몫이 많아지는데 공연히 일손을 빌려 일당을 주면 손해라는 것을 주민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새 조치의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다. 경쟁체제와 인센티브라는 물질적 보상제도가 노리는 목표는 ‘생산성 향상’이다.

전철이나 버스정류장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간이매대’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려는 ‘기업소(기업)’들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남측의 ‘테이크아웃’ 상점에 해당하는 간이매대는 8월15일 막을 내린 아리랑 축전 기간에 한시적으로 허용됐으나 이후 정식 판매수단이 됐다.

한 안내원은 “여름철에는 정식 상점보다 길가의 간이매대가 청량음료를 더 판다”며 “많은 기업소들이 간이매대 사업을 원하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고 말했다.

북한식 테이크아웃 - 평양=신석호기자

실제로 평양 거리에서는 자전거 뒤에 설치한 매대도 볼 수 있었다. 묘향산 주차장에도 간이매대 7, 8곳이 설치돼 영업하는 등 도시 이외의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기존 판매소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평양 시내에 있는 한 외국인식당 지배인(여)은 “안내원들이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데리고 와 다른 식당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음식과 봉사의 질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언론도 생산성 향상에 최대 역점을 두고 있는 듯했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 받아본 노동신문은 ‘기름작물을 대대적으로’ ‘현존발전능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더 많은 전력을’ 등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노동신문은 3일자에도 ‘경제관리를 잘 하는 것은 강성대국 건설의 중요한 요구’라는 기사로 이번 조치를 설명하고 대동강축전지공장 라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등의 성과를 소개했다. 신문과 방송에는 ‘밝은 타산’ ‘노력과 설비의 1% 효과적 이용’ ‘원가와 노력을 줄이자’ ‘혁신’ 등의 경제용어가 자주 등장했다.

평양시수출품판매소에 전시된 물건들에 원과 달러가 표시된 가격표가 붙어 있다. - 평양=신석호기자

과거 북한 사회에서 ‘타산에 밝다’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뜻으로 심한 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이나 개인이나 타산에 밝은 것이 덕목이 돼가고 있다.

북한이 7월1일 이후 물가와 임금을 동시에 인상한 것은 일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게 해 노동력을 창출하고 또 생산직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상대적으로 높이기 위한 것.

3일 평양역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7월 이후 월급이 올라 인민들의 살림살이가 훨씬 넉넉해졌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북한 주민도 이용할 수 있는 평양시내 ‘평양금강산판매소’ 정성희 지배인(50·여)은 “하루 판매액은 10∼15원으로 과거의 두세 배”라며 주민의 구매력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7월1일 이후 ‘1달러〓150원’의 환율이 엄격하게 적용돼 상점마다 진열대에 물건의 달러 가격과 원 가격을 적어놓은 표를 붙여놓았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전철은 10전에서 2원으로 올랐고 성인 남자의 이발비는 10원, 옥류관 냉면 200g은 150원이다.

평양금강산판매소와 평양수출품전시장에서는 고추장 1병이 150원, 참깨기름 225원, 딸기사이다 97.5원, 우유과자 45원 등이다. 상점 여성 판매원의 월급은 3000∼4000원이다.

평양〓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개혁후 외국방문객 줄이어▼

1일 유엔개발계획(UNDP) 직원들이 중국 베이징국제공항에서 평양행 고려항공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로 들어가고 있다. - 베이징=신석호기자

굿네이버스 방북 대표단 40명이 북한에 체류하는 4박5일 동안 북한은 온통 ‘손님’들로 북적댔다. 외부인을 안내하는 북한 안내원은 “요즘처럼 바쁜 적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북적거림은 평양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됐다.

9월30일 오후 4시경 중국 베이징(北京) 스위스호텔 내 북한 고려항공 사무실. 1일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 두 대에 혹시 자리가 남았는지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선생님처럼 화물기라도 타고 가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그럴 수 없습네다. 요즘 평양에 가시려면 오래 전에 예약을 하셔야 합네다.”(남자 직원이 전화통화에서)

여자 직원은 “아리랑 축전 때 승객이 많아졌는데 이후에도 줄지 않고 있다”며 “내일 230명이 자리를 잡고 50명이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1일 오후 베이징공항 탑승구에는 평양에 들어가는 외국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유엔개발계획(UNDP) 소속 인도인인 마쓰바이는 “현지 직원들에게 ‘변화의 관리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러 간다”며 “북한이 세계경제에 편입하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정교회 소속 포츠드니에프 신부는 “북한 당국이 평양에 러시아 정교회를 세우도록 허용했다는 말을 듣고 확인하러 왔다”고 말했다.

대표단은 2일 평양교예극장과 4일 묘향산에서 건국기념 연휴를 맞아 북한에 관광을 온 수천여명의 중국인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중국인 여성 가이드는 “한 사람이 3박4일 여행하는 데 중국 돈 2500위안(약 300달러)이 든다”며 “중국인들이 북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KBS MBC 등 한국 방송사 일행이 출국한 뒤 2일에는 한국 천주교 신부 100여명이 북한을 찾았다. 사단법인 남북어린이어깨동무 관계자 4명도 1일 대표단과 함께 입국했다.

대표단은 3일 순안공항으로 가는 길에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 등 미국 대표단 일행을 태운 벤츠 6대가 시내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염소농장 'CEO' 임귀남의 자본주의 경영▼

임귀남 지배인

불과 석 달 사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울퉁불퉁했던 비포장도로는 표면이 잘 다듬어져 포장도로나 다름이 없었다. 주민들의 집 외벽에는 하얀 페인트가 칠해졌고 산등성이마다 염소 축사들이 예쁘게 지어졌다.

평양시 강동군 구빈리는 북한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에 속했다. 그러나 염소젖을 짜 만든 산유(요구르트)와 치즈를 내다 팔아 도시인도 들어와 살기를 바라는 마을로 변했다.

개인별 경쟁체제와 인센티브제도를 잘 활용해 이곳을 바꾼 임귀남 지배인(44·사진)을 2일 만났다. 임 지배인은 96년부터 이 농장에서 일했으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농장 주민들에 의해 지배인으로 선출됐다.

-7월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살림살이가 더 좋아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쌀과 옥수수 값이 올라 수입이 많이 늘었습니다. 전에는 수입의 70%가 산유에서 나왔는데 이제는 산유와 곡물 수입이 반반씩입니다. 지난해 농장 수입이 400만원이라면 올해는 2000만원 정도 될 것입니다.”

-최고경영자(CEO)로서 경영 철학이나 원칙이 있다면….

“더 많이 생산하자면 모두가 발동이 걸려야 합니다. 지배인이 어떤 자극을 주고 능력을 개발하도록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개인별 경쟁체제와 물질적 보상이 주민들의 ‘발동’을 걸었습니까.

“그래요. 지금은 연말에 한 해 동안의 수입을 나눠주는데 앞으로는 월말마다 한 달 수입의 절반씩이라도 나누어 지급해 생산 의욕을 더 높일 생각입니다.”

-실제로 주민마다 생산과 소득에 큰 차이가 납니까.

“지난해 생산량을 놓고 보자면 ‘똑똑하게 한 사람’과 ‘건달뱅이’의 수입 차이는 5배입니다. 2만5000원을 받은 사람도 있고 5000원밖에 못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똑똑하게 한 사람’의 비결은 뭔가요.

“묵묵히 열심히 하는 겁니다. 누구는 오전 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염소와 함께 산 위로 올라갔다가 오후 8시에 내려옵니다. 누구는 늦잠 자고 올라가 점심을 먹는다며 염소를 데리고 내려와 낮잠을 자고 오후 2시 넘어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그는 “하루 종일 풀을 뜯은 염소와 주인 따라 왔다 갔다 한 염소가 차이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임 지배인은 최근 균 실험실을 만들어 산유와 치즈에 사용되는 다양한 균을 배양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잘 되면 다른 농장에 나눠줄 생각입니다. 그 대가로 돈을 받으면 주민들이 사는 데 도움도 되고 좋잖아요?”

평양〓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