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선미기자의 섹스&젠더]여자를 화나게 하는 것들

입력 | 2002-09-26 16:18:00


‘여자를 성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여자와 남자를 대립선상에 두고 적대관계를 만들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기자가 수집한 이야기들을 기록할 뿐이다.

1. 남편의 ‘맥주집’

오후 11시. 여자(30대)는 남편에게 휴대전화를 걸었다. 그는 정확히 4시간 전 “오늘밤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기 때문에 늦을 것”이라 했다.

휴대전화가 연결됐을 무렵 남편은 이미 만취해 있었다. 고래고래 고함도 질렀다.

그는 ‘호프’(Hof·맥주집)에 있다고 했다. 여자는 시속 120㎞로 운전해 그가 말한 장소로 갔다. 그를 무사히 귀가시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그의 밤 유흥문화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심정이 뒤엉켰다. 시계바늘은 오후 11시33분을 가리켰다.

그가 ‘호프’라고 일러준 곳은 알고보니 노래방을 겸한 단란주점이었다. 여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빠른 속도로 단란주점의 각 방문을 열기 시작했다. 종업원이 말릴 겨를도 없었다.

왼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3호실 남자의 오른손은 그의 옆에서 탬버린을 흔드는 긴 머리 여자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2호실 남자 2명은 그들 사이에 앉은 여자의 입 속으로 방울토마토를 넣고 있었다.

여자의 배신감은 극도에 달했다. 남편이 있다던 1호실에는 이미 손님이 바뀌어 낯선 남자 2명만이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자의 남편은 ‘호프’ 밖 노상에서 처량하게 잠들어 있었다. 남편은 “사회생활이 피곤하다”며 곤드레만드레 술주정을 했다. 3호실 남자와 2호실 남자들도 집에 돌아가 같은 말을 할까.

1년전 남편의 또다른 ‘호프’는 서울 강남의 유명 룸살롱이었다.

2. 아내는 나의 열렬한 팬

최근 기자는 한 남자 공무원(30대)을 서울 홍익대앞 퓨전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의 아내는 아이의 교육 때문에 그와 떨어져 수년째 외국에 살고 있다. 그는 원룸주택에 홀로 살고 있다.

‘기러기 아빠’로서의 애로사항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아내는 예나 지금이나 날 너무 사랑해요. 나를 따르는 열렬한 팬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녀의 사랑은 똑같은 무게일 수 없어요.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돼 있어요.”

그는 원룸주택의 아랫집 여자(20대)와 아주 손쉽게 섹스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미혼인 아랫집 여자는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세련된 패션감각으로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그는 여전히 한달에 3,4번 나이트클럽에서 20대 여자들을 만나 함께 잔다. 아내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오면 적당히 둘러댄다.

시간이 부족할 때에는 30분에 18만∼20만원인 서울 강남의 증기탕에서 몸을 푼다. 룸살롱 여종업원 못지 않게 훌륭한 미모의 서비스원은 빠른 시간 내에 그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줘 편하다. 업무가 밀려 고달팠던 얼마전에는 돈을 더 내고 여성 서비스원 2명을 요청했다. 셋이 둘보다 좋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3.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여자들은 기자를 깊은 비탄에 빠뜨렸다.

“남편의 잦은 술자리가 마음에 걸리지만 그러려니 하고 살아요. 남편을 다그치면 그나마 바깥일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을까봐 알고도 모르는 척 할 때도 많아요. 가끔 남편의 지갑이나 옷주머니를 몰래 뒤지는 정도지요. 설령 젊은 여자랑 하룻밤 잔다고 해도 이제와서 어쩌겠어요.”(40대 직장여성)

“남편이 전날 밤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아침 꿀물을 먹여 출근시켜요. 그래야 술 마시다가도 아내를 애틋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요.”(30대 전업주부)

그럼 남자들은 어떤가.

“룸살롱 여자들과 재미있게 놀면 바깥의 스트레스를 다 풀어내고 집에 가니 오히려 아내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회사원)

“아내가 아닌 여자와는 건물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섹스하는 게 다른 어느 곳보다 안전하면서도 스릴이 있다.”(정치인)

“일을 핑계로 젊고 섹시한 여자와 밀월 해외여행을 떠나본 적이 있다. 밤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서 담요를 덮고 옆으로 껴안은 채 섹스한 적이 있다.”(사업가)

기자는 ‘섹스 & 젠더’ 독자라고 밝힌 한 남성이 최근 보내온 e메일 내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내들의 성(性)이 대담해져 남편들이 받쳐주기에 역부족입니다. 힘없는 40대 남편들이 아내에게 쫓겨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실상도 알아주십시오. 자식을 향한 사랑의 절반만이라도 남편에게 쏟는 아내가 그리워지는 여성 상위 시대입니다. ”

그의 애절한 사연에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성난 얼굴로 돌아볼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아직 너무 많다.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