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새 시집 ‘뿔’을 선보인 신경림 시인은 “시인은 시대의 질문에 무감각하거나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사진=유윤종기자]
《4년만에 새 시집 ‘뿔’을 내놓은 신경림(67) 시인을 서울 성북구 정릉 자택에서 만났다. 끝물에 이른 태풍 ‘라마순’의 빗발이 점차 가늘어지는 오후였다. 스물 몇 해를 정릉 언저리에서 옮겨다닌 시인은 함께 살던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낸 뒤 지난해 처음 인근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단구에 단단한 체격의 시인이 엷은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자그마한 눈에 감춰진, 그러나 주변 시장골목에서 곁을 스쳐가는 사람이라면 선뜻 알아보기 힘들 서늘한 안광(眼光)이 72년 ‘농무(農舞)’가 쓰여질 30대 때의 모습과 마찬가지였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 겸 작업실에선 책상 가장 가까이 꽂힌 전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고교시절 그를 문학의 끝없는 세계로 인도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이었다.》
그 길은 아름답다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엔가/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이번 시집 1부에서는 유난히 ‘놓아두고 돌아가기’의 정서가 두드러집니다.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도./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그것들 모두/땅거미 속에 묻으면서’라고 쓴 ‘집으로 가는 길’등도 그렇습니다만.
“너무 개인적 맥락으로 해석하지 말기 바랍니다. 무언가 얻고자 항상 서둘러 뛰어다니는 것이 과연 우리가 말하는 행복인가를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질문이죠.”
‘특급열차…’는 특히 실제의 체험이 반영돼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지방 도시에서 강연 요청이 있어 서둘러 기차를 탔습니다. 창 밖의 풍경을 보다 이름없는 역에서 내렸죠. 시에 쓴 대로 꽃도 보고 장마당도 보고 했습니다.”
뿔 혹은 소외
그러나 버려진 이웃들을 보듬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꿋꿋함이 살아있다. ‘노동 소외론’을 말하는 듯한 표제작(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등의 시가 그의 현실인식에 대한 단서를 보여준다.
“사회주의는 자체 모순에 의해 사라진 것이고 그것에 집착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죠. 그러나 그것이 던진 질문들이 오늘날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이 한평생 남의 도구가 되기 위해 살 것입니까. 이것은 무슨 사상이나 주의에 앞서 삶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입니다.”
시인이란 무엇인가
시집은 평론가의 평문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뿔’은 시인 자신이 2000년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에 기고한 산문으로 끝을 맺는다. 이 글에서 시인은 “최근의 많은 시가 ‘울림’을 주지 못한다”며 그 이유가 “시를 너무 ‘만들어서’ 자연스러운 데가 없기 때문”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는 “말장난에도 삶의 무게가 실려야 한다”고 최근 시의 경박함을 질책하며, ‘독자와의 영합이 아닌 독자와의 소통’을 주문하고 있다.
“후배들이 ‘이 글을 읽으면 신경림 시를 이해할 수 있다’며 시집 말미에 실으라고 권하더군요. 아닌게 아니라 시를 쓸 때 스스로에게 내놓는 질문이 그 글에 들어 있습니다. 읽는 사람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게, 자연스럽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근황
시인은 주로 오전을 이용해 작업을 한다. 일주일에 한번 그가 석좌교수로 있는 동국대에서 강의를 한다. 오후에는 예전에 그가 이사장으로 재직한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들리거나 염무웅 현기영 홍상화씨 등 문우들을 만나기도 하고, 발길 닿는 대로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여행도 잦다. 1999, 2000년의 압록강 두만강 일대 여행은 이번 시집의 5부에 ‘오래간만이라고 왜 이제서 왔느냐고/다가와 잡는 손들도 있을 거야’(신의주-단동에서)라는 시어로 형상화됐다.
“언젠가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가 기억납니다. 필체연구가가 내 글씨를 보고 ‘깔끔떠는 성격’이라는 식으로 분석하더군요. 내심 놀랬습니다. 실제로 밖에 나가서 잠을 잘 못자고 음식도 가려먹는 편이에요. 최근 인도 여행 제의가 왔는데 벌써 겁을 먹고 있습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