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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66…아리랑(5)

입력 | 2002-07-07 17:34:00


“가족들이 들일하러 나갈 때도 미행이 붙는다 카더라. 연락은 없나, 돌아오면 반드시 알려야 한다꼬 말이다. 지난번에 아버지 김주익이가 동네 냇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서에서 끌고 가가, 글세 기생한테 술 받아 묵였다 카더라. 아들을 자수시키라, 자수시키면 목숨도 일자리도 보장해 줄끼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이고, 그런 거짓말을 누가 믿겠노. 김주익이 어디 바보가”

저녁 찬거리로 삼을 미나리를 다 뜯은 홀몸 아닌 여인네가 일어나 끝자락을 질끈 동여맨 치마를 풀고 미나리 다발을 안고 강둑을 올라갔다. 다른 여인네는 키 큰 잡풀 속에서 치마를 벗고 고쟁이 바람으로 강물에 맨발을 담그고 바지락을 캐기 시작했다. 하얀 색, 적갈색, 황토색 저고리 고름과 치마끈이 봄바람에 흩날렸다. 여인네들은 모두 햇볕을 가리려 밀집 모자를 쓰고 있지만, 땀이 밴 목덜미와 홀쭉한 발목을 가릴 수는 없다.

강둑 위에서 보면 여인네들이나 소나무 숲 아래서 은어를 낚고 있는 남정네들이나 모두 정지해 있는 듯 하다.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영남루 돌계단을 두 줄로 내려오는 소학생.

한일합병 조약이 체결된 1910년, 500년 전부터 밀양 사람들이 믿고 섬겨왔던 영남루와 아랑각이 있는 산꼭대기에 이 두 가지를 노려보듯 신사와 콘크리트 기둥문이 세워졌다.

조선 소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아침 6시에 참배를 하고 경내를 청소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 아침밥을 먹고 다시 영남루에 모여 집단으로 등교해야 했다.

책보따리를 든 빡빡머리 소학생들이 강둑으로 내려가 배다리를 건너간다. 봄은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병자들처럼 누르딩딩하다. 베 저고리에 잠방이를 입은 남자 아이, 단추 달린 바지저고리 차림의 남자 아이, 깃 세운 저고리를 입은 남자 아이, 치마 저고리 차림의 여자아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다.

봄의 미풍이 금줄이 처진 문안으로 불어들어, 처녀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듯 버드나무 가지를 흔들고 지나갔다.

한 시간이나 늦잠을 잔 우철은 발정하여 날개를 늘어뜨리고 암탉의 주위를 맴도는 수탉을 걷어차고 마당을 내달렸다. 금줄을 지나 햇볕 속으로 나가는 순간, 단순한 기쁨이 발바닥에서 위로 밀려올라왔다. 봄! 우철은 눈앞에 있는 새로운 하루를 바라보았다. 동생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맞는 아침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안고 나와 보여주고 싶었다. 봄이다! 아침이다! 우철은 벚꽃잎이 떠 있는 물구덩이를 건너뛰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