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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혁신' 히딩크에게 배워라

입력 | 2002-05-29 17:41:00


거스 히딩크 감독 영입 후 축구국가대표팀에 일어난 변화는 기업이 최고경영자(CEO)를 외부에서 영입, 경영혁신에 성공한 과정과 비슷한 점이 많다.

경영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은 문제의 정확한 진단→상황에 맞는 혁신 프로그램 도입→CEO의 확신과 비전→열린 커뮤니케이션과 저항 극복→작은 성공으로 자신감 심어주기→혁신확산의 과정을 대부분 밟는다.

▽나를 알고 변화한다〓2000년 말 한국 대표팀 수장으로 취임한 히딩크 감독은 작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 때까지 선수 개개인과 팀의 장단점을 탐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빨리 베스트 멤버를 확정, 훈련에 집중하자”는 주장에 흔들리지 않았다.

보스턴 컨설팅 이병남 부사장은 “상당수 한국의 대기업이 회사 역량이나 특성도 감안하지 않고 유행하는 혁신 프로그램을 급하게 도입, 혼란만 자초한 점을 생각하면 히딩크 감독의 침착함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이 오랜 진단 끝에 내놓은 처방도 경영인들이 곱씹어볼 점이 많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팀의 문제점으로 ‘기술’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체력’ ‘조직력’ ‘생각하지 않는 축구’를 꼽았다. 기본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 시장점유율, 매출액, 성장률 등 화려한 목표만을 추구하다 몰락한 기업은 모두 경영자가 ‘기업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은 회사들이다.

그는 또 훈련 도중 곧잘 선수들을 불러 “왜 그 방향으로 움직였나” “왜 이런 패스를 했느냐”고 묻곤 했다. 투지만 앞세워 전략없이 움직이는 조직의 한계는 축구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을 내세우는 히딩크 감독의 전략은 미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초일류기업들이 추구하는 ‘벽없는 조직’과 기본 개념이 똑같다. 구매-생산-마케팅-영업 등 각 조직이 부서 이기주의에 빠진 회사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힘들다.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동시에 추구〓히딩크 감독은 CEO로서 비전과 확신도 보여줬다. 작년 여름 프랑스와 체코에 5 대 0으로 잇달아 대패해 ‘오대영’이라는 비아냥 소리도 들었지만 올해 초 북중미 골드컵에서도 승패보다는 체력훈련에 열중했다. 자신이 설정한 비전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

현대경제연구원 김주현 전무는 “경영혁신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은 CEO가 열린 자세로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하면서 변화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는 단계”라며 “히딩크 감독은 이를 훌륭하게 처리했다”고 평가했다. 이 과정은 CEO에게 부드러움과 단호함, 즉 서로 모순되는 미덕을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에 실천하기 어렵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개인훈련 지시를 할 때도 선수가 ‘왜 이런 훈련이 필요한지’ 납득할 때까지 반복해서 설명해줬다. 선수들의 이유있는 ‘어필’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는 또 선수들의 사생활은 보장하면서도 식사시간에는 각 테이블에 선후배가 골고루 섞여 앉도록 했다. 후배가 감히 선배에게 말도 못 붙였던 과거 대표팀의 문화를 깨려는 처방.

또 그라운드에서는 모든 선수가 서로 반말을 하도록 했다. 선후배 의식이 경기 중 선수들간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다고 본 것.

반면 히딩크 감독은 개인 훈련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맡은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선수는 출전기회를 박탈했다. 때로는 야속할만큼 냉혹한 그가 선수들의 신뢰를 얻은 것은 연고주의에서 벗어나 공정한 평가와 인사를 했기 때문.

그는 ‘먼저 작은 성공(Quick Win)을 거둬 자신감을 심어주라’는 경영혁신의 명제도 실천했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만성적인 ‘유럽 징크스’를 깨며 1년5개월간의 훈련으로 달라진 모습을 선수들과 국민에게 보여줬다.

이제 남은 것은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도록 혁신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