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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여우와 솜사탕'의 어말숙과 성구자

입력 | 2002-01-15 18:58:00


성격은 그의 운명이다. 맞는 말이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역시 얼마쯤 맞는 말이다.

대신 남자도 여자 만나기 따라 팔자가 달라지긴 마찬가지다. 결혼해서 원수처럼 살아가는 부부들을 보면, 부부의 연(緣)에 얼마나 많은 업(業)이 작용하는가 싶을 정도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두 아줌마 어말숙과 성구자를 보면서도 더욱 그렇다.

이들은 둘다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다. 특히 어말숙은 첫사랑 국민과 맺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의 삶은 과연 어땠을까? 그리고 만약 성구자가 지금 봉진섭 같은 타입과 결혼했더라면?

어말숙은 답답함을 느꼈겠지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구자는 아마 이혼했을 것이다. 이혼하지 못했다면 남편의 가부장적인 권위를 경멸하며 불행하게 살았을 것이다.

▼계층상승 욕구 대리만족▼

열등감이 없다면 성취동기도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성구자는 열등감이 많은 아줌마다. 고등학교 다닐 땐 잘사는 친구 신세를 져야 했고 역시 가난 때문에 대학에도 가지 못했다. 그가 붙잡은 거라곤 남자밖에 없다.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 살아야 했고, 남편을 조종해서라도 그를 통해 일정한 성취를 이뤄야 했다. 다행인 건 둘째딸 선녀가 공부를 잘해 줬다는 것이다. 한의과대학을 다니는 딸을 통해 좀더 나은 계층으로 진입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못할 일이 없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어말숙은 그다지 열등감이 없는 유형이다. 열등감 없는 사람이 있으랴만 그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며 복수를 꿈꾸진 않는다는 뜻이다. 첫사랑을 친구한테 뺏기긴 했지만 그것도 치명적인 건 아니다. 아련한 아픔이야 있지만. 성취동기도 야심도 별로 없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중매 결혼해 순종적인 아내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정신과적으로 말하면 ‘수동공격적’ 타입이다.

▼성격이 운명이라지만…▼

이 두 아줌마가 일치하는 부분은 바로 자녀에 대한 집착이다. 성구자에겐 자신이 이루지 못한 지적인 성취를 이룬 선녀가 자신의 분신이다. 남편에게 눌려지내는 어말숙은 아들 강철을 통해 억압된 애정욕구를 보상받는다. 두 사람 다 자신의 정체성을 남편 아닌 자식에게서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만약 두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몇가지 충고를 하고 싶다. 우선 자신의 생각이 늘 옳다고 믿고 그걸 표현하는 데 머뭇거림이 없는 성구자는 흑백논리를 버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울 필요가 있다. 주부의 자기 주장이 강하면 가족들이 숨쉴 틈을 찾지 못한다.

어말숙도 권위적인 남편에 대한 원망을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 어물쩍 현실에 무릎꿇고 살다가는 분노가 쌓이게 돼 반드시 한번은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전에 좀더 적극적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성격이 운명이라면, 그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선택은 스스로가 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