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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주부 함돈영씨 '홀로 다녀온 5월의 시베리아'

입력 | 2002-01-15 16:51:00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미국)는 ‘가지 못한 길’이란 글에서 남겨 두고 떠난 나머지 한 길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꿔,바꿔’를 외치고 불가능의 경계도 분명찮을 만큼 모든 것이 바뀌는 요즘 세상, ‘가지 못할 길’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에 가정에 대한 희생과 봉사로 점철된 여성의 자기를 되찾는 변신은 정당하고 당연한 것 아닐까. 여행을 통해 ‘가지 못한 길’을 밟을 수 있다면 인생의 회한따위는 없을 터. 여행을 통해 나를 되찾은 여성은 의외로 많다. ‘나를 바꾸는 여행’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여행을 하면 할수록 주위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답고 소중해 지는 것을 느껴요. 내가 사는 동네도, 나라도, 가족과 친지도 긴 여행 후에는 더 사랑스럽고 가깝게 다가와요. 참 이상하죠. 피곤해야 할 텐데 오히려 활기를 되찾으니 말이에요.

처음 ‘나홀로 여행’을 떠난 건 1990년이었어요. 장남(현재 의대 레지던트 3년차)의 대학 합격에 대한 일종의 ‘보너스’ 였지요.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이 멍해지더라고요. 가족들에게 떼밀려 얼떨결에 나만의 여행을 가게 됐어요.

별 기대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는데 가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새 세상을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평소 책을 읽으면서 그저 머릿속에나 그렸던 나와는 아무 관련없는 먼 세계라고 느꼈던 것들이 제 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을 체험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지요. ‘내게도 나만의 내 것이 있구나, 그것을 찾아보자.’ 뭐 이런 것이었지요.

그 후 틈만 나면 혼자 여행을 떠났고 이제 여행은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어요. 가정생활도 달라졌지요. 두 딸아이가 고3이었을 때도 서너번 여행을 다녀왔으니까요. 가족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남편(의사)과 아이들 모두 엄마의 여행에 협조자입니다. 그런지도 벌써 11년이 지났어요. 한 해 네 번정도니 그 횟수가 40회는 족히 되네요.

경비는 남편이 지원해주지만 제 스스로도 모아요. 보석 명품브랜드 쇼핑 이런 겉치레 대신 알뜰하게 절약해서 모으지요. 다음 여행지 찾느라 늘 인터넷 서핑하고 책 구해 읽고…. 덕분에 제 공부도 많이 해요. 이런 모든 게 다 즐거움이에요. 책읽고 정보 구하고 경비 모으다 보면 다음 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로 생활이 즐겁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엄마가 즐거우니 온 가족이 즐거울 수밖에요. 여행가방 싸는 일, 그것처럼 즐거운 것이 없어요.

이 글 읽는 엄마들, 눈 딱 감고 여행 한 번 떠나 보세요. 저처럼 혼자서요. 저 넓고 새로운 세상에 엄마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서보세요. 아니 뭐 이런 거창한 구실을 달지 않더라도 식구들 밥해 먹이는 것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을까요.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가족과 만나 보세요. 아마 사랑과 애정이 분수처럼 샘솟을 거예요. 가장 인상깊었던 여행이라면 ‘열차로 횡단한 시베리아’를 들고 싶네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모스크바까지 9박10일간 여기저기 내려 구경하고 다시 타고…. 노란 민들레 만발한 5월의 시베리아 들판, 한 침대칸에서 동행하며 십수시간을 함께 지냈던 마음씨 착한 러시아 촌부와 고려인들이 생각납니다.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고 음식도 나눠 먹으며 함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일…. 다시 간다면 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에 떠나고 싶네요.

여행을 자주 다니기는 해도 그렇다고 아이들 ‘AS’(After Service·요즘 50대 주부 사이에서는 시집장가간 자식 살림봐주기, 손자손녀 봐주기 등 자식 뒤치다꺼리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까지 마다할 참은 아니에요. 때가 되면 엄마의 ‘본업’을 되찾아 좋은 엄마, 좋은 할머니 될겁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열심히 ‘나’를 위해 살겁니다. 그러기에 여행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엄마들, 용감해집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납시다. 지금 바로 나홀로(함씨는 이렇게 말하고 그날 인도와 안나푸르나봉이 있는 네팔로 15일간의 긴 여행길에 올랐다).

53·서울 강남구 대치동

◆ 시베리아 횡단열차 패키지

5∼9월에 출발할 일정. 인천공항∼블라디보스토크(1박·시내관광)∼횡단열차 탑승(열차1박)∼하바로프스크(시내관광·1박)∼열차탑승∼이르쿠츠크(1박)∼바이칼호(러시아식 사우나 체험)∼이르쿠츠크(1박)∼열차탑승(1박)∼노보시비르스크(1박)∼알타이(관광)∼열차탑승(2박)∼모스크바(1박)∼시내관광후 열차탑승∼상트페테르부르크(1박)∼시내관광후 1박∼열차탑승∼모스크바∼인천공항. 롯데관광 02-399-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