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원만치 않은 가운데 최근 이루어진 북한 경수로 시찰단의 방한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사업이 대단히 느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또 미국의 대테러 전쟁 개전 이후 대화가 중단된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 북-미 양측의 비협력적 상황으로 인해 1994년 북-미기본합의(이하 기본합의) 이행의 핵심인 경수로 건설 및 핵사찰 수용 모두가 지연되고 있다. 경수로 건설 진척 상황에 맞물려 북한의 핵사찰 수용이 진행되는 현재의 기본합의 이행체제에서는 경수로사업의 원활한 진척이야말로 북한의 핵의혹 제거를 위한 유일한 합법적 수단이 될 것이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조기 핵사찰 수용을 주장하는 미국에 대해 수용 불가로 맞서며 역으로 경수로 건설 지연에 대한 전력 손실 보상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KEDO의 첫 경수로 완공 연도인 2003년이라는 시기는 어떠한 계약상의 법적 구속력도 없는 목표 시점이므로 북한의 전력 손실 보상 요구를 수용할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조기 핵사찰을 수용할 의무 또한 없다.
문제는 북한의 핵사찰 수용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북한의 과거 핵 활동 규명이 어렵게 되고 핵 동결의 준수 또한 확신하기 힘들게 될 것이므로 기본합의의 성립 의미 즉 경수로를 북한에 건설해주는 의미가 퇴색된다는 점이다.
1995년 12월 KEDO-북한간 경수로공급 협정 체결 이후 6년이 경과한 지금 경수로사업의 종합공정 진척도는 15% 정도에 불과하다. 북한은 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난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의 과거 핵 활동을 규명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면 핵사찰 수용, 경수로 핵심 부품들을 북한으로 이전시키기 위한 북-미간 원자력협력협정의 체결, 플루토늄을 포함한 8000여개의 흑연로 사용 후 핵연료의 제3국으로의 반출, 동결 중인 흑연로 및 재처리시설의 해체, 경수로의 사고 발생에 대비한 사고보험, 경수로의 안전 운전을 위한 독립 전원의 확보, 북한 전력 인프라의 개선 등이 그것이다.
IAEA에 의하면 북한의 과거 핵 활동 규명에 3∼4년 정도의 사찰 기간이 필요하므로 북한이 경수로사업의 원활한 진척을 바란다면 의무는 아니지만 당장이라도 핵사찰을 수용해야 한다. 그런 후 미국은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의 핵사찰 수용 시기에 맞추어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당량의 전력을 현재의 중유 공급과는 별도로 제공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상당한 비용과 기술 및 전문 인력 등이 요구되는 핵 시설의 해체라든지 경수로 완공 후 안전 운영 문제 등에 대해서는 국내 원자력계가 적극 협력할 수 있게끔 미국이 주선해줄 것을 제언한다. 국내 원자력계가 20여년간 쌓아올린 원자력발전의 노하우가 KEDO 경수로사업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강정민(핵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