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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올 '추석 대박' 주인공 누굴까?

입력 | 2001-09-28 10:50:00


추석이면 엄마는 송편 안에 어떤 속을 넣을까 고민하고, 충무로 극장가 사람들은 어떤 영화로 극장 ‘속’을 채울지 고민한다. 영화 시사회 분위기를 보면 A영화가 나은데 B영화사와의 관계가 켕기고, 생각지 않게 C영화가 잘 나와버리고, 제법 몇 주를 상영했는데 끊자니 매정한 것 같은 D영화가 징징대며 발목을 잡고…. 올 추석에는 극장마다 사랑, 액션, 코미디 등으로 다양하게 ‘속’을 채워놓고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추석 무렵에는 한국 영화가 많은 편이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추석은 한국 영화의 가장 큰 대목이었다. 그 전까지 한국 영화는 설 연휴와 여름·겨울 방학 등 다른 ‘빅시즌’에는 외화에 밀려 찬밥 신세였다. 할리우드 영화 피해가기 등으로 개봉 시기를 눈치봐야 했고, 그나마 한국 영화에 조금은 관대했던 추석시즌을 겨냥해 개봉날짜를 맞추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추석을 앞두고 충무로의 영화 편집실은 밤낮없이 불이 켜져 있었고, 한 편집실에서 두 영화의 편집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 극장에 상영관이 십여개씩 되는 멀티 플렉스 시대를 맞아 요즘은 한 영화를 서른 개의 극장에 붙이는 일을 대단하게 생각지 않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추석에 개봉하는 영화를 몇개 안 되는 단관 극장에 나눠 붙이느라 지금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경쟁이 치열했다. 추석 영화 한편으로 영화사들이 1년 경상비를 벌어들이던 시절이었다.

추석 무렵 개봉한 영화들이 차지했던 영화관은 불과 2∼3개였고 당시에는 롱런이 필수였다. 그래서 영화사들은 기획 단계부터 추석을 노린 공략을 세웠다. 자사 영화를 추석 극장가에 붙이기 위한 신경전도 치열해 서로에 대한 견제와 정보 수집, 귀동냥도 심했다. 고향에 못간 사람들을 위한 단순한 액션영화나 추석을 계기로 더 가까워지려는 남녀들을 위한 섹스 영화 등 ‘단순함과 자극’이 추석 영화의 주요 테마였다.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흔히 말하는 야한 영화인 ‘애마부인’ ‘매춘’ 등이 추석 시즌에 개봉돼 롱런을 했다. ‘동방불패’ ‘용형호제’ 등 4자성어류 제목의 홍콩 액션영화도 90년대 중반까지 빠지지 않는 추석의 단골 메뉴였다. 특히 청룽(成龍)의 영화는 삼촌과 조카들이 함께 보는 영화로 당시 충무로의 당연한 ‘기본 라인업’이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즐겨 상영하던 4대문 밖 ‘변방 극장’에서 평소와 달리 깜짝 놀랄 흥행스코어가 나오던 때도 대개 추석 무렵이었다.

‘접속’ ‘노는 계집 창’ ‘마리아와 여인숙’ ‘블랙잭’ 등 한국 영화가 집중 개봉됐던 1997년 추석부터 그 전의 추석과는 다른 흥행 결과가 나타나 주목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추석 극장가의 승자로 야한 장면이 많으면서 작품성도 있던 ‘노는 계집 창’을 점찍었다. 그러나 결과는 ‘접속’의 대대적인 승리였다. 당시 같이 개봉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에어포스 원’도 제쳤다. 그때부터 추석 영화의 룰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98년에는 집안일을 돌봐야 할 주부들을 극장가로 불러냈던 ‘정사’가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함께 추석 관객들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99년에는 의외로 생각을 필요로 하는 영화 ‘식스 센스’가, 2000년엔 ‘공동경비구역 JSA’가 빅히트를 쳤다.

다양한 장르의 맛깔스러운 영화들이 속이 궁금한 송편처럼 가득 차려져 있는 올 추석 극장가는 어떤 결과로 막을 내릴지 궁금하다.

정승혜(씨네월드 이사) amsaja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