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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피터 벡/승자없는 전쟁

입력 | 2001-07-11 18:33:00


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자신에 대한 비우호적 보도를 언짢게 여긴 대통령은 주요 신문과 방송사 사주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명령했다. 내가 지금 말하는 대통령은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다. 활력이 넘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부와 언론 간에는 불가피하게 긴장이 있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선 어느 한쪽이 질 때까지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제4의 권부로 불리는 언론은 정부의 활동에 대해 본질적인 견제 구실을 한다. 언론의 구실은 ‘애완견(lap dog)’ ‘감시견(watch dog)’ ‘투견(attack dog)’ 등에 비유할 수 있다. 애완견은 정부가 말하는 대로 보도하고, 투견은 이념이나 사적인 이유로 정부를 무조건 공격한다. 언론의 가장 적합한 구실은 독자들을 대신해 정부를 공명정대하게 감시하는 감시견에 해당할 것이다. 미국의 유력 언론은 감시견에 해당하나 한국 언론엔 애완견 감시견 투견이 모두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요즘 정부와 언론 간의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은 갈수록 목소리를 높이는 언론을 통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싱가포르에선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서방 언론인들이 투옥됐다. 일본 언론은 애완견 심리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미국 언론도 40년 전에는 훨씬 고분고분했으나 70년대 초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1971년 6월 뉴욕타임스는 국방부 기밀문건을 토대로 일련의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문건은 정부가 이길 수 없는 전쟁, 즉 베트남 전쟁에 관해 국민에게 솔직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닉슨 전 행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보도 중단을 사법부에 요청했으나 대법원은 대법관 9명의 전원일치 판결로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 뒤 닉슨 전 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정보누설 방지팀’과 많은 언론계 인사를 포함한 ‘적들의 명단’을 만들었다.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세무조사 대상이었다. 그 이듬해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들은 백악관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건물에 있는 민주당 본부를 도청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기사화됐고 결국 닉슨 전 대통령은 사임했다.

한국에서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언론 개혁이 미온적인 수준에 머무른 탓에 많은 사람들은 언론을 손댈 수 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이례적으로 많은 데서 볼 수 있듯이 언론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엔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 거의 없다. 언론은 더욱 투명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탈세는 국가의 감시견 구실을 해야 할 언론으로선 심각한 위반행위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 등 유력지들은 특정 가문의 소유이지만 사주들은 편집엔 관여하지 않는다.

정부와 언론 간의 긴장관계는 요즘도 존재한다. 클린턴 전 행정부는 자신들의 문제를 언론계 인사들을 포함한 우익진영의 음모 탓으로 돌리려 했고 공화당은 진보적 언론에 대해 불평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뉴욕타임스 기자에 대해 저속한 표현을 썼다. 양자의 관계와 관련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한 편집간부는 “유력 신문이 권력자들과 적대적 관계인 것은 자연스럽고 적절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긴장관계가 당연하다 해도 한국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시기와 처벌의 강도를 감안한다면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이번 세무조사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어떤 정치인은 사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는커녕 갈등의 불길을 거세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 같다. 서로 다투는 수많은 집단을 지켜보는 일은 외국인의 눈에도 슬프기만 하다.

펜타곤 페이퍼(국방부 문건)와 워터게이트 사건의 경우 결국 언론과 국민이 승리했고 닉슨 전 대통령은 사임을 강요받았다. 한국에선 과연 승자가 있을지 분명치 않다. 아마 관련 당사자 모두가 결국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정부와 언론 간의 긴장이 치열한 대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들만 패자가 될 것이다.

피터 벡 beckdon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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