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으로 개봉되어 네티즌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다찌마와 Lee!'는 과거의 각종 영화를 패러디하고, 수많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이용하였다.
'서울 인근 지역 올로케, 일백프로 후시 녹음, 호외 뉴스, 남대문 용팔이'
영화 선전 문구에서 보듯 '다찌마와 Lee!'를 통해 관객들은 전설속의 은자 그 이름 '다찌마와 Lee!'를 통해 한국 액션 영화의 역사를 다시 관람하였다.
"말이 없는 것을 보니 고독을 즐기는 모양이군"이나 "순결한 처녀들의 몸에서 더러운 너의 손을 떼지 못할까" 같은 느끼한 대사나 촌스러운 극 분위기가 보여주듯 '다찌마와 Lee!'는 70년 한국영화의 과장된 영화 문법을 차용하여 의도된 삼류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의도된 과장과 능청스러움을 우리는 볼빨간의 2집 앨범 '야매'의 음악을 통해 다시 만난다. 오리지널이 아닌 '자격증 없는 비전문가에 의한 행위나 결과물'을 뜻하는 앨범 타이틀 '야매'를 통해 그는 시대가 외면해온 뽕짝과 트로트를 통해 끝없는 유치찬란함을 선보인다.
그의 앨범 타이틀 '야매'가 보여주듯 볼빨간은 수학여행 관광버스에서나 들었을 법한 트로트 음악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하지만 아련한 일상의 기억들을 무작위 편집한다.
그의 음악은 거대한 시대의 소명의식을 가진 창작이 아니라 단순한 놀이의 도구이자 세상을 향해 대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볼빨간은 신해철의 위압감도, 안치환의 진지함도 청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내 사랑의 설명서를 주세요'에서 들려주듯 고졸 출신인 월봉액 여섯 자리 남자의 3류 인생에 대한 쓸쓸한 패배의 보고서를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특히 이런 패배의식은 9회말 투아웃 역전의 기회에도 벤치를 지키고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인생 역전타'를 통해 자조적으로 노래한다.
하지만 볼빨간은 스스로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류에 떠밀려 나온 삼류 인생을 뽕짝과 트로트, 테크노와 지루박을 넘나들며 능청스럽게 묘사한다.
1998년 테크노 뮤지션 달파란에 대한 존경과 찬사의 뜻으로 '볼빨간'으로 개명하고 '달파란 테크노 리믹스쇼'를 패러디해 발표했던 '볼빨간 지루박 리믹스 쇼'를 통해 당시 터부시 되었던 뽕짝을 재구성하였다면, 이번 앨범 야매를 통해 볼빨간은 뽕짝을 교묘히 최첨단으로 치닿는 테크노를 비트에 실어내고 있다.
그리고 반복적이고 감각적인 테크노 비트위에 볼빨간은 80년말 백두산의 보컬에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유현상의 샤유팅 창법을 느끼하게 소화하고, '이젠 준비가 됐는데'를 통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볼빨간 버전의 '불효자는 웁니다'를 선사한다.
분명 볼빨간이 나열한 위의 곡들을 통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오버하고, 코믹하고 복고적인 'B급 인생'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철저한 아마츄어리즘에 입각하여 '싸구려 구린 음악'을 생산하고 대중에게 포복절도의 웃음을 선사한다. 마치 유승완 감독이 과거의 액션 영화를 패러디한 활극 영화를 통해 일약 충무로 키드에서 키치 문화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볼빨간의 음악 '야매' 역시 새로운 장르 음악의 개척자로 남기를 기대해본다.
류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