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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이슬람과의 대화]언론통제 허무는 인터넷 열풍

입력 | 2001-06-17 18:46:00


“국내 TV는 거의 안 봐요. 스타TV나 TNT(미국 타임워너사 연예 오락채널) 등 외국 방송이 인기를 끌지요.”

쿠웨이트에서 만난 한 대학생(20)의 말이다. 국영 TV는 자체 제작물은 물론 외화조차 ‘반 이슬람’ ‘폭력성’ ‘제국주의 성향’ 등의 이유로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상영관 영화나 비디오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밀반입된 비디오와 DVD, 컴퓨터 게임 CD 등을 거래하는 암시장이 붐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 대학생 대부분이 인터넷을 쓰고 있는데 정부는 ‘문제 웹사이트’를 막느라 바쁘다. 한 대학생은 “우연히 성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봤는데 다음날 보니 그 새 폐쇄돼 있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역시 언론매체의 ‘반이슬람적’ 내용을 검열한다. 국제금융업이 발달해 위성방송 채널도 많지만 이슬람 전통에 어긋나는 여성의 신체 노출은 허용되지 않는다. CNN방송 프로그램도 다른 나라에 비해 3분 정도 늦게 방영되는데 검열 때문이란 말이 있다. 외국 신문과 잡지는 군데군데 오려진 채 전달되기도 한다. 유신독재 시절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슬람 국가는 언론 출판의 자유보다 이슬람 문화의 유지라는 종교적 이념을 우선하기 때문에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79년 제정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헌법은 ‘이슬람 정신에 어긋나거나 인민의 근본 권리를 해롭게 하지 않는 한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되어 있다. 또 ‘제국주의의 완전한 제거와 외국 영향력 배제’를 언론의 사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란 정부의 헌법 해설 자료는 이 같은 이슬람 국가의 언론 목적을 더 명확히 보여준다.

‘신문 잡지 라디오 TV 등 매스미디어는 이슬람 혁명 정신을 계승하여 이슬람 문화를 전파하는 데 봉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디어는 갖가지 건강한 사상이 만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슬람 정신에 배치되거나 파괴적인 내용의 전파와 선전은 강력하게 통제돼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오만 카타르 등 군주제 형태의 중동 이슬람 국가는 물론 이란 시리아 파키스탄 등 공화국도 모두 언론 자유보다 종교적 이념을 우위에 두고 있다. 독재정권 붕괴 후 언론 자유가 신장된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슬람 문화에 어긋나는 내용은 금기시된다. 이집트 터키 말레이시아 등은 지리적 조건이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앞서 거론된 국가의 언론과 차이가 있다.

오만에는 국영 오만TV와 2개의 정부 소유 일간지가 있는데 직원 신분은 모두 공무원이다. 이 밖에 민간 방송사와 일간지 주간지가 있지만 공무원에 상당하는 책임이 부여되어 있고 기사에 대한 정부 통제도 강하다. 특히 군왕의 사생활이나 후계 체제 등 왕실 관련 기사는 철저한 검열을 받고 있다.

요르단 역시 왕정국가로 언론활동에 이슬람적 통제는 있다. 그러나 유럽 영향을 많이 받아 언론 활동은 활발한 편이다. 영자지 요르단 타임스를 비롯해 아랍어와 영어로 된 신문의 기사 소재와 논조는 상당히 자유롭다.

모로코는 유럽 대륙의 스페인과 인접한 까닭에 주요 언론 기관이 국영 형태임에도 불구하고TV 연속극에 여타 중동지역 이슬람 국가에 비하면 ‘파격적인’ 반팔 차림의 여성이 출연한다.

시리아는 공화국이지만 언론 활동은 답답하다. 당 기관지 성격의 신문과 정부 기관지 성격의 신문은 과거 박정희 독재정권 때처럼 대부분 1면에 대통령 소식을 사진과 함께 전하고 있다. 위성방송에 대한 통제는 심하지 않아 유럽과 레바논 등으로부터 발신되는 80여개의 채널을 통해 각종 해외 뉴스와 오락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중동 국가 가운데 이라크의 언론 통제는 전체주의 국가와 비슷하다. 주요 신문과 방송은 국영이며 당연히 기자와 PD 신분은 공무원이다. TV 방송은 매일 저녁 1시간 정도 장기집권 중인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일대기를 내보낸다. 일부 민영 신문이 있지만 영세해 제 기능을 못한다. 유엔 경제제재 조치로 경제가 사상 최악이라 한달 월급이 10일 생활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환멸을 느껴 관광안내원으로 변신한 기자 출신 A씨는 “이라크 신문이나 방송은 거의 안 보고 영국 BBC의 아랍어 방송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정권이 장악한 파키스탄도 이라크와 비슷한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과격이슬람 세력인 탈레반 정권은 TV 방송 자체를 금지하는 등 이슬람권 국가조차 비판할 정도로 가혹한 언론 통제를 하고 있다.

언론 규제에 따른 욕구 불만의 돌파구로 축구 등 스포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유럽발 유료 포르노영화 위성방송을 묵인하는 것도 욕구 불만 해소의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아랍권 사람의 특징인 수다스러움도 이같은 공적 언론의 통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컴퓨터와 인터넷의 확산은 이슬람 국가의 언론환경에 변화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탈 이슬람화’보다는 세계적인 ‘민주화 흐름’에 순응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반 이슬람’을 내세워 ‘반 정부’ 세력을 탄압하는 정치 세력은 인도네시아의 경우처럼 언젠가 민중의 저항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인터넷 위성방송 휴대전화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지배하는 ‘21세기 정보시대’를 맞아 이슬람국가의 언론은 ‘이슬람의 가치’와 ‘언론 자유’를 둘 다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hanscho@donga.com

▼이란기자협 부회장 아르간데 푸르▼

이란은 이슬람 국가 중 최근 언론자유에 대한 논의가 가장 뜨거운 나라다. 8일 대선에서 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압승함에 따라 언론자유를 향한 개혁파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게 됐다. 지난해 4월 보수적인 이슬람 성직자 세력이 사법부를 동원해 개혁성향의 신문 20여개를 폐간시키자 대학생과 시민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7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이란기자협회의 아르간데 푸르 부회장(사진)은 “사법부가 신문 폐간에 그치지 않고 보수세력을 비판해온 기자를 투옥해 분개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기자협회는 5, 6명의 투옥 기자들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생활비 마련을 위해 모금도 했다.

이란 최대의 정치세력인 이란이슬람참여전선(IIPF)의 정보위원회 책임자이기도 한 그는 “하타미 대통령은 정치범 담당 판사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사신을 보내는 등 언론 규제를 안타까워 했다”고 말했다. 보수파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하타미 정권 2기에는 이란의 언론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그는 확신했다.

이란의 TV 방송은 모두 국영으로 보수파의 아성이다. 신문에는 아무래도 개혁 지지세력이 많다. 79년 이슬람 혁명 전 88개였던 언론사는 현재 1100여개로 늘어났다. 한 공무원은 “폐간을 해도 기자들이 곧 새 신문을 만들어내 정부 규제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언론 규제로도 봇물 터진 언론 자유에 대한 욕구를 더 이상 막기 힘든 상황임을 시인하는 말이다.

푸르 부회장은 지난해 의회선거에서 언론인 출신 35명이 당선된 것을 예로 들었다 “언론인은 사회개혁 주도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어 여론의 지지가 강력하다”고 말했다.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