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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초학문 교수들 서울대 등진다

입력 | 2001-06-11 18:37:00


“희생과 ‘헝그리 정신’만을 강요당하는 서울대 교수 자리에 더 이상 미련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학자가 되려고 서울대를 떠날 생각입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강석진(姜錫眞) 교수는 이달말 고등과학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그는 99년 황준묵 교수(수학과)와 이기명 교수(물리학과)에 이어 서울대에서 고등과학원으로 이적한 세 번째 교수다.

강 교수는 경력 8년차인 부교수이며 ‘젊은 과학자상’(99년)을 수상할 정도로 촉망받고 있어 그의 이직은 서울대 교수들에게 충격을 던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math.snu.ac.kr/∼sjkang/) 게시판에 ‘이제 얼마 안 남았네’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울대 수학과에서 (지원은 거의 없는데) 이만큼 하는 것은 기적”이라며 “학생들도 좋은 선생님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싶다면 그만한 열의와 예의를 갖추라”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기초학문을 홀대한다며 집단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기초학문 교수들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고 있다.

▽떠나는 교수〓98년부터 최근 4년 동안 자의로 서울대를 떠난 교수 19명 가운데 인문·사회·자연대 교수가 8명으로 42%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현재 서울대 교수 1483명 가운데 이들 단과대 교수는 439명(29.6%)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기초학문 분야 교수들의 이직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두뇌한국(BK) 21’ 사업이 시작된 99년 서울대를 떠난 교수 7명 가운데 5명이 인문·사회·자연대 교수였을 정도다.

자연대의 한 조교수는 “신규 임용된 젊은 교수들 대부분이 열악한 연구환경에 실망한다”면서 “연구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등과학원으로 옮긴 이기명 교수(물리학부)는 “서울대에 비해 강의와 행정 업무 등에 대한 부담이 적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시절 연평균 6편의 논문을 썼지만 고등과학원으로 옮긴 뒤 연평균 7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의 연봉은 사립대의 60∼70% 정도다. 교수 경력 8년차 부교수인 강 교수의 지난해 연봉은 3300여만원. 또 기초학문 분야는 응용학문과 달리 정부나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연구비를 조달할 길이 막막할뿐더러 외부의 연구 용역을 받기도 쉽지 않다.

▽해외 우수인력의 외면〓외국의 우수한 인력도 서울대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자연대 생명과학부는 영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박모 교수를 임용하려 했지만 박 교수는 열악한 연구 여건을 들어 임용을 거부했다. 99년 생명과학부도 한 교수를 초빙하려 했지만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생명과학부의 한 교수는 “기초학문 분야는 외국 유명대학은 고사하고 국내 사립대학과 경쟁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설과 기자재 등이 낙후됐다”고 한탄했다.

▽기초학문 연구 차질〓서울대의 인력관리에 차질이 생기면서 기초학문 연구에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자연대 박성현(朴聖炫) 학장은 “교수의 사기는 갈수록 떨어지고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아 장기적으로 기초과학 연구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고등과학원 명효철(明孝喆) 교수부장은 “외국 대학들은 우수한 경쟁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면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parky@donga.com